터키여행 2022

[데니즐리] 빌라델비아의 성 요한 교회 유적

정안군 2022. 5. 15. 00:03

시내버스에서 함께 내린 승객의 아름다운 도움을 받아 성 요한 교회 유적을 찾아간다.

그런데 찾을 이유도 없는 것이 바로 옆으로 거대한 기둥 두 개가 서있었다.

 

바로 저기군.

엄청난 크기의 기둥 유적이었다.

미스 타이의 다리 같이 늘씬한 이오니아 도리아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아니라 헤비급 레슬러의 몸통 같은 모습.

코끼리 모습 같기도 하고.

 

우리 마나님도 어느샌가 할매가 되더니 걷는 자세도 할매.

아 세월이여.

 

성 요한 교회.

St. Jean Church.

이름이 세인트 존 처치가 아니라 생 장 처치가 되었을꼬?

관광객으로 온 터키 아줌마들과 순례지로 온 우리가 오늘 여기를 찾은 사람이다.

 

위의 구조는 아치였었고 그 아치를 기둥이 받쳐 주던 구조였나 보다.

너무 크기가 커서 옆에 있는 자미 마당에 가서 찍었다.

 

옛 성 요한 기념 교회 자리에 세워졌다는 자미.

이 건물도 1390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기념 교회에 비하면 애기 중의 애기.

언젠가 강성범이 유행시켰던 우리 엔벤에서는 하던 개그가 생각난다.

우리 엔벤에서는 연도가 세 자리는 되어야 큰 소리를 내지 네 자리 가지고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밉네다.

아주 오래된 형님을 잘 모시고 지내거라 덜 오래된 자미 아우야.

 

기념 교회는 AD 600년에 지어졌단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당시의 빌라델비아 교인들과는 시차가 몇 백 년이 난다.

그래도 그 후손 또 후손의 후손이 믿음을 잘 지켜 이런 기념 교회를 지었을게다.

지금은 그 후손들의 믿음의 줄기가 끊어져 보인다고 단정하지 말자.

장소는 바뀌었어도 다른 곳에서 꽃을 활짝 피웠으니.

여기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믿음이 이어 지고 이어져 나도 한 크리스천으로서 이곳에 선 것이 아닌가?

 

두 종교의 조화.

기독교 교회 두 기둥과 이슬람 첨탑.

화해의 상징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정원에는 발굴할 때 발견되었을 유물들이 조금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상당한 보물들인데 워낙 역사가 깊은 이곳에서는 그냥 그렇고 그런 물건들.

 

기둥은 두 개가 아니고 세 개이었다.

본래 여섯 개였다 하던데 나머지는 자미 자리에 있었다고.

이 건물을 지을 때도 이곳의 장기인 재활용이 많이 이용된 듯 보인다.

기둥에 쓰인 건축 자재를 보면 여기저기에서 스카우트되어 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거대한 두 개 기둥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은 나머지 세 번째 기둥.

 

기념 교회를 이루었던 구조물의 일부일 게다.

역할을 잃고 이제는 그저 그런 구조물로만 남아 있다.

 

벽 장식이 신통하지 않아 어디 박물관으로 스카우트되지 못한 석관인가 보다.

돌이 흔한 곳이라 석관이 보편적이었던 모양.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저런 주택들이 여기도 꽉 차 있었을 것이다.

모두 철거되고 그나마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일까?

 

석관은 주인공을 잃고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돌에 남은 십자가.

 

발굴 조사하던 곳인 듯.

원래 건물이 있던 자리에서 세월이 지나 지표면이 많이 올라와 있다.

먼지처럼 쌓이는 흙이 세월이 지나면 얼마나 많아지는지 잘 보여준다.

 

여러 모양의 석재가 사용된 것도 참 흥미로웠다.

빌라델비아에 있던 성 요한 기념 교회는 어느 순간 그 임무를 마친 것이다.

예배당으로서의 기능 말이다.

지금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새의 영역이 되었다.

새들의 훌륭한 안식처가 된 기념 교회라.

사람에게나 새들에게나 안식처는 필요할 테니.

교회 터가 폐허가 되었다고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말자.

교회는 특유의 생명력을 가지고 다른 곳에서 그 생명을 이어 갔을 터이니.

 

요한계시록 일곱 초대 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 교회 현장에 와서 보고 간다.

이제 여섯이 남았는데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와 보니 감동이 참으로 크다.

역시 보이는 것은 순간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기 마련이다.

나를 이곳에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