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悠悠自適)
여유가 있어서 한가롭고 걱정이 없어서 속세에 속박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내는 상태나 그러한 태도를 뜻한다.
거 좋네.
어제 바나바와 바울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르다가 무리를 해서 오늘은 그냥 편하게 지내기로 했다.
사실 안탈리아는 더 이상 크게 가고 싶은 곳도 없다.
박물관은 석상과 석관에 질렸고 폭포가 있다고 하지만 세계 랭킹 몇 위에 들 정도면 몰라도 그런저런 폭포는 다른 곳에도 흔하니 굳이 이곳에서 그런 곳을 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구 시가지에 가서 놀다 오기.
우리 동네에서 KC06이나 KL08 시내버스를 타면 되는데 가다 보니 전망이 좋은 공원이 있어서 급히 내렸다.
전망대인가 보다.
경치 좋고 다 좋은데 다른 곳과 단절된 느낌이다.
콘야알트 해변으로 내려가려면 급경사를 이루는데 뚜벅이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해수욕장 근처에 사니 일부러 내려갈 이유는 없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니 걸어서는 안 되겠고 뭔가를 타야만 했다.
그 근처가 박물관이 있는데 두 트램의 종점이기도 했다.
하나는 탈 이유가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 즉 빨간 트램은 관광용이라서 구시가지를 관통하고 지나가니 그놈을 타기로.
오래된 트램을 달리게 해서 관광객이나 주변 주민들의 편의를 돕는 모양이다.
그런데 타려고 카르트를 갖다 대니 불편한 소리가 난다.
돈이 떨어졌다는 신호란다.
한 명은 통과된 상황이니 좀 난감한데 승무원이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란다.
그게 돼?
된다네.
실제로 해 보니 되었다.
이러면 그동안 카르트 가지고 속 썩은 것이 한 마디로 괜한 짓을 했다는 것인데.
아무튼 탄 김에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하는데 가다 보니 트램 연변에 관광지인 핵심 올드 타운이 있었다.
종점까지 가는 사람은 주민밖에 없다.
경치도 보통 동네와 다를 바가 없고.
갔다가 돌아오느냐 내 카드를 써 보았는데 안 된다.
그 이유는 알 수 없고 아내는 비자 마크가 붙었고 내 카드는 마스터 마크인데 그게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신용카드 찍고 나는 무임 승차.
보통 카르트 검사를 엄격하게 하는데 주민들만 이용하는 종점이라서 그냥 패스가 가능했다.
6리라 벌었네.
근데 단 돈 500원에 괜히 심장이 벌렁벌렁.
절대로 그 돈 아끼려고 그냥 탄 것은 아니다.
심장 벌렁벌렁 해서 그 돈보다 더 손해난 격이니.
톱하네(Tophane)에서 내렸다.
바로 아래로 옛 항구 자리가 보인다.
저기로 바나바와 바울이 들어왔겠지.
거거서 시내로 가는 길은 급경사길이다.
배에 시달려 지친 몸으로 경사를 올라가느냐 힘이 드셨겠지만 육지에 도착을 했으니 나름 뿌듯도 했을 듯,
여기가 안탈리아 최고 명소처럼 보인다.
다른 곳에 갈 일 없이 여기서 죽치기로 하는데 우연히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신다는 부부를 만났다.
베를린은 그리운 곳인데 족보 조사를 해보니 나와는 동향.
이분들은 베를린에서 패키지로 여기를 오셨단다.
베를린 공과대학에 두 아들을 넣었다는 자랑에 독일 파워 등등.
그런데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에 사는 교민들을 만나면 그들의 높은 콧대가 대단해서 우리는 괜히 주눅이 들어 고분고분 들어주곤 했는데 요즘은 그게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부러워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게 코리아 파워구나.
아무튼 나라가 강성해져야 그 나라 백성도 나가서 기를 펴고 다닐 수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
그 사이 우리 한국이 이렇게 달라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거나 아니라고 부정한다는 거.
쿨하게 그 고향 선배 부부에게 얻어먹고는 다음을 기약한다.
딱 보니 그리스 정교회 건물이었다.
지붕 위에 있던 십자가는 철거가 되고 목적을 잃은 건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안쓰러웠다.
어떤 대단한 분 묘란다.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보행자 거리를 좀 걸었다.
올드 타운은 카페 천국.
온통 그런 곳인데 모여드는 사람도 다양하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가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버스는 매우 혼잡했다.
바다 물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에 악수에서 올 때 만났던 청년 이야기가 생각나 곤돌라 승강장까지 가 본다.
종점까지 가면 되는 곳인데 버스가 주택 밀집지를 통과해서 더 붐비는 듯.
앞으로 더 탈 일도 없겠지만 KC06 버스는 삼가자.
KL08로 가기로.
청년에게 들었던 대로 바다 고기 어판장은 없었다.
듣기로는 어판장에서 고기를 사서 구워주는 집에 맡기면 된다 했는데 실제 연기가 나는 곳을 가보니 그런 곳이 아니고 피크닉 장소였다.
아는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 와 바비큐를 하면서 즐기는 곳.
널따란 공간에 소나무 숲이라서 보기도 좋고 냄새도 좋았으나 우리는 그야말로 개꾼.
빈말이라도 먹고 가라는 인간은 일도 없었다.
누가 터키 사람들 친절하다고 했어?
하긴 친절한 것과 인심 좋은 것은 다를 수도 있다.
고깃값이 여기는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비싼 나라이니.
저녁 무렵의 콘야알트 해변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다는 솔직히 동해안 해수욕장에 못 미친다.
마데인 코리아는 뒤에 솔밭이 있어 더 운치가 있지 않은가.
공통점이 있긴 한데 둘 다 수심이 급격히 떨어져 서해안 해수욕장 같지 않다는 점.
아무튼 예쁘긴 했다.
안탈리아는 뭔가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안 하고 그냥 노는 곳.
즉 유유자적하기 적당한 곳이다.
이곳의 장점이란 싸다는 것.
유럽 친구들이 싸서 좋아 많이 몰렸고 그래서 유명세를 타지 않았나(하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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