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 2022

[안탈리아] 바나바와 바울이 이 길을 걸었겠구나

정안군 2022. 5. 18. 00:48

우리 숙소가 있는 곳은 구도심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콘야알트(Konyaalti) 해수욕장 주변이다.

잔 자갈로 구성된 해변은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지만 어쨌든 앞으로 펼쳐진 바다가 지중해 아닌가.

지중해.

로마는 이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 불렀다.

그 시기 바나바와 바울은 이런 팍스로마나의 혜택으로 이동의 방해 없이 여기저기를 다닐 수가 있었다.

전체를 다닐 수는 없지만 오늘은 바나바와 바울의 이동 경로의 일부를 찾아 나도 다녀 보기로 한다.

 

콘야알트 해수욕장 끝에는 토로스 산맥의 막내에 해당하는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곳을 곤돌라를 타고 오를 수 있다 하여 가보았다.

버스 종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승강장이 있었는데 어째 콘돌라가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더니 아직 영업시간이 아니란다.

구글에서는 10시부터 시작된다고 나와 있는데 오후 1시부터라고.

하늘에서 지중해와 안탈리아 도심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했는데 초장에 김이 샜다.

그렇다면 이제 구 도심으로 진출해 보자.

구도심까지는 거리가 꽤 되어 한참을 갔다.

숙소는 부엌이 딸려 좋기는 한데 볼거리가 있는 곳까지 이동 거리가 좀 먼 것이 흠.

구도심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하드리아누스 게이트.

 

생각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

안탈리아의 명물로 관광객들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 세계 도처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모처럼 동아시아 사람도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인이 아니어도 비슷한 모습이라 그것만으로도 반갑더라.

이 게이트는 2세기 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만들어졌다 하니 바나바와 바울이 이 문을 통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나 이 문이 세워지기 전에 다른 형태의 문이 있어서 이곳을 지나긴 했을 것이다.

아래쪽 항구에서 내려 급한 경사를 올라 이곳의 어떤 성문을 통과하여 중심부로 나아갔겠지.

그 당시는 배 여행이 가장 편했다고는 하나 두 사람은 긴 항해에 몸이 상당히 지쳐 있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앞 기둥 4개의 색깔이 모두 같지가 않다는 점.

왼쪽 기둥은 다른 것과는 출신지가 다른 곳에서 가져온 듯하다.

황제의 명으로 문을 건설하라고 했으니 급하게 완공을 해야 했겠고 그러자니 제일 쉬운 것이 가까운 신전 터에 있던 기둥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성 밖에서 성 안으로 찍은 모습이다.

여기도 맨 왼쪽 기둥의 색이 다른데 반대편 기둥 하나와는 비슷한 걸 보면 이 두 개는 같은 곳에서 가져왔나 보다.

 

하드리아누스 게이트 옆의 성벽.

바나바와 바울이 여기를 왔을 때 이런 성벽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후대에 여러 차례 보강 공사는 했겠지만.

 

게이트를 통과한 바나바와 바울은 버가 지금의 페르게(Perge)로 갔을 것이다.

돌아올 때는 이곳 앗달리아를 거쳤다는 기록이 있으나 들어올 때에는 앗달리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황 상 이곳을 지나서 버가로 갔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도행전 13장 13절과 14장 25절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근처 해변 공원을 가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카라알리올루 해변 공원.

이름에서 하와이에서 만났던 공원 분위기가 풍기는데 무슨 관련이 있는지.

 

가는 도중 별다방을 만났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이스탄불 베벡의 것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적어도 뒷배경으로 천 년 이상의 성벽이 있으니.

 

카라알리올루 해변 공원.

그야말로 산과 바다의 조화이다.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진 해변이 콘야알트.

 

저 돌출된 암벽 뒤로 옛 항구가 있었다.

아마도 바나바와 바울은 이 항구로 들어와 육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긴 항해를 무사히 마치게 해 준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바닷바람이 솔솔 불고 경치는 훌륭해 여기에 있는 찻집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생과일로 만든 주스 두 잔이 50리라가 안 되었다.

이런 천하제일의 풍광이 보이는 찻집의 가격이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던.

 

이제 여기서 우리는 버가로 가고자 했다.

바나바와 바울은 걸어서 갔겠지만 우리는 트램을 타고 이동하기로.

여기가지로 죄송스럽지만 땡볕 아래에서 별로 특징 없는 도로를 걸어가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였다.

대충 16 Km 정도니까 걸을만하기는 하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구도심 언저리를 지나가는 트램이 있는데 가까운 역 이름이 도우 가라지였다.

도우는 동쪽을 의미하니 동에서 온 가라지라는 뜻인지.

가라지가 아닌 알곡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서 이름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다른 뜻이 있을 거야.

트램으로도 한참을 갔다.

버가 즉 페르게가 있는 마을은 악수(Aksu)라는 곳이다.

왔으니 밥 먹고 하기로.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한다.

 

레스토랑이 많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제법 손님이 많을 걸 보니 맛집이었던 모양.

호객 행위가 대단한 걸 보면 우리처럼 뜨내기손님이 많아 보이는데 그래도 맛집인 건 다행이다.

초르바를 보고 부담 없이 간 곳이다만.

 

초르바를 보고 왔으니 그것을 시켰고 나는 간단하게 먹으려 했는데 아내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

닭고기를 제법 시켜서 제법 먹었다.

이래저래 바나바 바울 두 선생님께 죄송스럽다.

이런 때는 형님이라는 표현보다는 선생님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페르게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 걸어가기는 무리라는 결론이 이미 났으니 선택은 택시.

가볍게 택시로 페르게 유적까지 이동한다.

영 죄송스러운 마음이 트리플 더불이 된다.

 

페르게는 이런 모양이었단다.

도시 외곽에는 극장과 스타디움이 있을 정도로 부유한 도시였다고.

 

도시 모형이었는데 유리로 덮여 있어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았다.

로만 게이트와 게이트를 보호하려는 옹성과 치가 보인다.

 

저것이 야외극장.

여기서 많은 연극 공연이 펼쳐졌을 것이다.

 

로만 게이트.

바나바와 바울 일행이 이 문을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도시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거대한 건축물 기초 재료로 재활용이 많이 이용되었던 모양이다.

석회석으로 구성된 부분에 대리석 조각이 섞여 있는 것이 흥미롭다.

로마 사람들은 허례보다는 합리적인 것을 좋아했다더니 그런가 보다.

 

최고의 명당자리를 차지한 아내.

도대체 뜨거워서 햇빛 아래로 다닐 수가 없었으니 저것이 최고의 실속이다.

 

무슨 신의 좌대이었을까?

지식이 짧으니 알 수도 없고 로마인들이 숭배하던 신들의 숫자가 엄청났다 하니 짐작하기도 힘들다.

사실 로마인들은 수많은 신들을 섬겼으니 도시 곳곳에 신상들이 서 있었고 거기에 날마다 향을 올리고 가끔씩 희생제물을 바치기도 했다.

아마 지금은 로마인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유럽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겠지만 로마의 도시는 현재 네팔의 카트만두와 비슷했을 것이다.

 

전차 경기가 벌어졌을 스타디움.

이런 스타디움이 나오는 영화에서의 명 장면은 역시 벤허이다.

찰튼 헤스턴이 유다 벤허를 연기했었다.

유다 벤허는 '허'의 아들 유다라는 뜻이다.

벤은 히브리어로 아들을 뜻하니.

허(Hur)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탈 이집트 후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두 팔을 하나씩 잡았던 사람이 아론과 훌로 나오는데 그 훌이 바로 '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을 받은 사람답게 아버지는 명문가 출신이었고 당연히 그 아들 유다도 그랬다.

 

바나바와 바울이 이 도시에 왔을 때 처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페르게는 로마 문을 지나 중앙 도로를 걸으면 살아 있는 듯한 온갖 신상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고 건축물들은 온갖 장식으로 꾸며져 화려함이 절정에 달한 듯한 도시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즐겁게 놀고 상인들은 물건을 팔려고 소리치며 손님을 끌으려 하고 여기저기엔 신전과 신상들이 있었던.

여기에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이 넓은 세상을 배로 혹은 나귀를 타고 또는 걸어서 복음을 전파한 사람들.

바나바 바울.

힘이 있는 자들은 전쟁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인 복음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려 했고 실제로 바꾸었다.

야구 용어에 게임 체인저라는 표현이 있다.

경기의 흐름을 바꾼 사람을 의미하는데 바나바와 바울은 사실 상 히스토리 체인저였다.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람들.

 

페르게 유적은 워낙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그러기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 바나바와 바울이 여기에 온 것이 건축물이나 역사 공부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바나바와 바울은 이 도시를 떠나 북으로 향했지만 나는 유적을 뒤로했다.

유적지 공터에는 양귀비가 만개해 있었다.

이 두 사람도 이 양귀비를 보았을까?

마침 양귀비 꽃의 색은 순교를 의미하는 붉은색이다.

바나바는 키프로스에서 그리고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함으로 양귀비의 꽃 같은 피를 땅에 흘렸다.

아무런 대가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며 온갖 박해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두 사람.

나도 그 마음을 가슴에 담았으니 페르게를 뒤로 해도 서운할 것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바나바 그리고 바울 선생님.

그리고 안녕 페르게 아니 버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