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 2022

[이즈미르] 바다가 있어 좋다

정안군 2022. 5. 24. 00:35

오늘은 데니즐리에서 우연히 만나서 정상회담을 하고는 다시 이곳에서 만난 미국 교포 부부와 헤어짐이 있는 날이다.

그분들이 여기 와서 들었던 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지막으로 옮긴 곳이 이곳.

 

파크(Park) 호텔.

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보기에는 별로 대수롭게 보이지 않으나 안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자태가 옛날 귀족 부인 같은 모습에 품위가 있어 보여서리.

지금은 지은 지 오래되어 낡은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바닥 대리석에 내부 장식하며 고상함이 넘쳐 나더라.

아내는 구닥다리 같아서 별로라고 하지만 이런 앤티크 스타일이 좋은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곳이다.

값도 비교적 싸고 주차장도 있다.

터키 구시가지는 주차란이 엄청나 이런 주차장이 있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호텔 앞 카페에서 마지막 정상 회담을 마치고 두 분은 택시로 공항에 가시고 우리는 어제 마련해 둔 숙소로 옮기는데.

 

새로 옮긴 숙소 창밖 풍경이다.

알산작(Alsancak) 트램역 근처이다.

바로 앞에 세차장이 있어서 낮에는 세차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그다지 신경에 거스리는 정도는 아니다.

이즈반, 트램 그리고 바닷가가 5분 정도 걸려 위치 최상.

또 대형 마트 Migros가 걸어서 5분, 작은 마트도 주위에 많아 이것도 최상.

우리 숙소 옆에 러시아 여인인 듯한 묘령의 아가씨가 미니스커트 차림에 수상한 몸짓을 하는 것만 빼면 다 좋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기는 했다.

일단 와이파이가 너무 약했고 부엌 도구 몇 가지가 시원찮았다.

이런 것들이 시원찮은 것에 비해 주인은 화끈해서 와이파이는 우리 방 앞에 더 설치하는 것으로 끝냈고 화기는 내일 보충을 해준단다.

그러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을 조건이 된다.

이제 여기서 대충 4주 정도 지내면 OK.

우리랑 에스키셰히르에서 잘 지냈던 선생님 부부는 오늘 한국으로 가시고 우리의 충동에 앞서 터키에 왔던 자매도 귀국.

이제 인연이 있던 사람은 다 터키를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

하지만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이어지리라.

 

와이파이 손 볼 시간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하여 밥도 먹을 겸해서 해안으로 나갔다.

터키 음식은 이제 보기도 싫은 정도가 되어 마침 어제 방문했던 한국 식당 소풍에 가보기로 한다.

오늘도 여전히 손님이 많다.

주인 총각에게 물어보니 체인점이란다.

대략 터키에 매장이 여섯 개 정도 되는.

육개장을 시켜 먹었는데 터키에서는 훌륭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미달 수준.

특히 김치는 볶은 김치도 아닌 것이 모양이 볶은 김치였다.

하긴 만난 지 오래라서 그것도 김치라고 먹긴 했다만.

여러 가지로 수준이 셀추크 식당에 미치기 어렵다.

터키 사람들이 주로 주문하는 것은 김밥 떡볶이 정도.

육개장을 시켜 먹는 우리가 신기했던지 터키 종업원이 맛이 있냐고 물어 그냥 인사치레 해 주었다.

 

해안에 나온 김에 바다 산책을 해보기로 한다.

여기도 이스탄불처럼 배를 통학이나 통근 수단으로 이용하는 노선이 있다.

물론 이스탄불처럼 대륙을 넘는 것은 아니고 만을 이룬 지형이라서 건너편으로 배를 이용해 가는 것이다.

다른 교통수단이 있으나 배가 질러가는 것이라 괜찮은 수단인지 이용객이 제법 많았다.

두 군데를 가는데 우리가 선택한 것은 일찍 출발하는 배.

보스탄르(Bostanli)행.

이즈미르 교통카드를 이용해야 해야 하는데 미국 교포가 주고 가신 카드에 충전을 해서 클리어.

 

배가 제법 크다.

바로 목적지에 가는 가 했더니 이쪽 해안 Pasaport라는 곳에 한 번 더 정박을 하고는 건너갔다.

오 이렇게 삼각 무역을 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배를 내리지 않고 우리가 탔던 곳으로 그냥 돌아와야 되겠네.

했는데.

 

멀리 이즈미르 시가지가 보인다.

이즈미르는 고대 그리스가 건설한 대표적인 '이오니아 식민 시'로서 세워진 이후 계속해서 그리스인의 도시로 있었다고.

 

튀르크 세력이 아나톨리아를 석권할 당시에도 아나톨리아의 그리스 세력이 최후까지 항전한 거점 중 하나였다.

그 후 수백 년에 달하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제국이 망국에 다다른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도시 인구의 절반인 15만 명이 그리스인이었다.

이는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그리스 왕국의 수도 아테네보다 더 많은 인구였으며 이즈미르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코스탄티니예에 이어 그리스인이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그 영향 때문인지 오스만 제국 시절 이 도시의 별칭은 바로 이교도 이즈미르(Gavur İzmir)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그리스가 점령하여 그리스-터키 전쟁 당시 아나톨리아를 수복하려는 그리스군의 거점이 되었으나 1922년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터키군이 승리하면서 이즈미르는 터키 영토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전쟁 막판 터키군의 이즈미르 입성 과정에서 발생한 이즈미르 대화재와 전쟁 이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인해 이즈미르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지던 그리스인의 영향력은 일소되어 버렸다.

하지만 한때 '이교도 이즈미르'로 불렸던 만큼 여러 민족이 공존하던 국제도시로 번성하던 이즈미르의 역사와 아타튀르크의 터키군이 이즈미르를 수복한 것에 대한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이즈미르는 터키 세속주의와 공화인민당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그리스에서는 이즈미르를 스미르니(Σμύρνη)라고 따로 부른다.

'이즈미르'라는 단어도 스미르나에서 유래한 것으로, 터키어에서 어두에 자음이 여러 개 오는 게 안 되어 앞에 모음 İ 를 붙인 것이다(이상 구글에서 정리)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갑자기 내린 결정이라서 내려 봐야 갈 곳도 모르고 한지라 그냥 돌아 오려했는데 이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바보는 아니었다.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서 모두 내려야 했다.

그렇겠지, 누가 자선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바다 색깔은 그저 그렇지만 활짝 열린 바다를 보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이즈미르는 정말 천혜의 항구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 맞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런 곳을 찾는 데는 귀재였으니.

이런 곳을 다시 찾으려 했던 그리스나 절대 내줄 수 없었던 터키나 다 이해가 간다.

 

배에서 일단 내려 몇 발자국 안 걷고 다시 부두로.

부두 건물이 웅장하다.

터키 국기는 더 웅장하고.

국기를 강조하는 나라일수록 전제 국가에 가까운 법이라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배편이 많아져 얼마 기다리지 않고 출발지 알산작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골목길.

전체적으로는 환락가 모습인데 쇠락한 지역도 있고 잘 나가는 골목이 혼재된 복잡한 곳이다.

내일 아침거리를 준비해 숙소에 돌아와 보니 와이파이는 해결 중이었다.

잠시 후 터키 수준으로 뻥 뚫리는 와이파이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부엌 열기구만 해결되면 거의 별 4개 수준으로 접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