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여행 2022

[부다페스트] 안드라씨 대로를 따라서(상)

정안군 2022. 6. 22. 01:09

컨디션 난조인 아내는 숙소에서 쉬고 혼자 거리 구경에 나섰다.

우선 공포의 관(Terror Haza)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념관을 먼저 보려고 했다.

이곳은 박물관 겸 정치적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이 있다고 한다.

아침부터 좀 으스스하고 보고 나면 우울해지는 곳을 보려니 유쾌한 것은 아니나 사는 게 늘 즐거운 일만 보고 살겠는가?

 

가는 도중 학생인 듯한 인물상을 만난다.

1956년 헝가리 반소 항쟁 그때를 회상하며 만든 동상일까?

이 항쟁은 소련군의 강경 진압으로 수 천명이 희생되고 20여만 명이 해외로 망명하는 참담한 비극을 남기면서 실패로 끝났다.

학생들의 희생도 컸다 하니 총을 잡기는 했지만 공부를 갈망하는 그때를 회상하는 것 같기도 한데 글쎄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 헝가리로 현대사가 피로 얼룩졌다.

 

2차 세계 대전이 패전으로 끝나면서 소련의 점령지가 되고 그 뒤로 쉽지 않은 세월을 산 헝가리의 민중들.

그 민중들을 공포로 몰아 넣은 주체가 자기 정부와 소련이었다.

 

소련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과 2차 세계대전 중 헝가리 정부를 이끌었던 당의 상징 애로우 크로스가 선명한 공포의 관이다.

아이러니한 것이 소련과 헝가리는 적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편에 붙었다가 많은 땅을 다른 나라에 넘겨주어야 했던 헝가리는 다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 땅을 회복하려는 희망으로 다시 독일 편을 들었다.

잘 알다시피 처음에는 좋았다.

하지만 수렁에 빠진 독일군을 제압하고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 소련군은 헝가리로 들어오고 헝가리군은 거의 무너진 전력으로 저항을 해 보지만 결국은 항복하고 만다.

항복한 군인들은 포로로 시베리아로 보내졌고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소련의 위성 정권이 등장하면서 다시 억압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이렇듯 적이었던 두 독재 정권이 헝가리 민중들에게 공포를 가져온 것이다.

 

어느 시절인지는 몰라도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이 건물 벽에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을 1991년에 희생자를 기리는 관으로 만들었다는 말인가?

까만 건 글씨요 흰 것은 판이니 내는 모르겠다.

 

베를린 장벽 한 조각이 여기 와 있네.

1997년 연수 때 많이 봤다 아이가.

동독이 무너지면서 도미노 현상처럼 주변의 많은 공산 국가들의 정권이 무너졌으니 그걸 기념해서 독일 정부가 보내 주었나 보다.

 

억압의 상징 쇠사슬.

그리고 건물 앞에는 공산 국가들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때의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여기는 건물의 문이 항상 닫혀 있어서 지금 연 상태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런데 여기도 그랬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아직 열리지 않아나 했더니 가까이 가니 열리더라.

 

애로우 크로스(화살 십자가)와 소련의 별.

두 원수가 나란히 서있다.

애로우크로스는 나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와 친구였다.

 

벽을 장식한 희생자들의 사진.

많기도 참 많다.

 

건물 중정원을 차지한 소련의 탕크.

아마 헝가리 항쟁 때 밀고 들어온 그 탕크가 아닌가 싶다.

입장료가 있었다.

3000 포린트니까 우리 돈 만원이 살짝 넘는 돈.

그리고 안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에 가방은 맡겨야 했다.

두 정부의 비밀경찰들이 본부로 사용하던 건물이라서 그런 관계의 전시물이 많았다.

인상 깊었던 것이 개인 신상 기록실.

도청이나 첩보를 통해 얻은 개인 기록을 철저히 관리했던 모양이었다.

그것에 대해 증언자들의 증언이 방영되는 곳도 있었고.

처음 시작한 2층에서 1층으로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로 지하로 내려갔는데.

그 엘리베이터는 어두컴컴했고 아주 느리게 내려가면서 그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화면을 틀어 주었다.

괜한 공포가 밀려 올 정도.

 

지금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다.

뭔가 지옥으로 가는 느낌이 이럴까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하는 지옥이었다.

고문실, 취조실 그리고 처형장.

한 사람이 서면 꽉 차는 공간의 감옥.

그리고 서지도 눕지도 못하게 만든 감옥.

그 감옥에는 그곳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 사진은 분위기를 보라고 살며시 찍은 것이다.

여기저기 직원들이 감시를 해서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시절.

이런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현실이니.

 

보고 나니 남 나라 어둔 시절을 일부러 돈 내고 봐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돈을 물려줄 일이 없으니 좋은 경험 했다고 위안을 삼아야 하겠지.

 

건물을 나와 회쇠크(영웅) 광장에서 이어지는 안드라씨(Andrassy) 대로를 따라 도나 쪽으로 내려가 본다.

안드라씨는 헝가리 정치가인데 자세한 것은 구굴에 물어보시라.

 

이곳도 별다방은 있다.

그러나 투르키에의 추억은 잊어야 한다.

그렇게 싸고 좋은 시설은 이 동네는 없다.

이제 별다방은 다시 투르키에에 가지 않는 한 갈 일이 없다,

 

옥타곤이라는 번화가에 등장한 별셋과 짜장면 집 애들 회사.

두 회사가 미래를 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좀 더 내려가면 오페라 관이 있다.

로비는 화려했고 공연은 더 화려하다고 하는데 그 공연을 볼 일은 없겠다.

 

안드라씨 대로는 풍치가 있었다.

주변에는 유명 메이커 숍도 많았고.

파리 상제리제를 모델로 만든 도로라던데 그에 못지않은 듯하다.

나는 실제 상제리제를 걸어 본 사람이니 증언은 참되다고 할 수 있다.

 

그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 엄청난 크기의 교회가 등장을 한다.

바로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다.

분명히 성당이 아니고 대성당이 맞다.

이슈트반은 성경의 스데반, 영어로 스테판을 말한단다.

이쪽이 뒤쪽이었는데도 엄청났는데 앞으로 가보니 거기는 더 했다.

 

광장도 넓고 앞에서 보는 성당은 더 크고.

여기는 입장료를 내야 안에 들어갈 수 있단다.

얼마인지는 몰라도 난 그렇게 못 하겠다.

크리스천인 내가 돈을 내고 교회에 들어가야 되겠어?

 

이 분은 세체니이다.

얼마나 대단하신지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과 전쟁의 여신 아테네 등 네 명의 신이 지키고 계신다.

두 명은 제우스와 비너스였던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엄청나다.

그런 의도로 지었을 테니 놀라 줘야지.

 

드디어 도나 강변에 도착을 했다.

강 건너에 어부의 요새가 보인다.

야경도 훌륭하다지만 밤에 일부러 나와 보기는 힘드니 그건 테마 세계기행으로 대신하면 어떨까 싶은데.

낮인 지금도 경치는 훌륭하다.

 

한참 공사 중인 세체니 다리.

이걸 걸어서 건너 봐야 되는 것인데.

강 건너 부다 성이 보인다.

여기도 입장료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생략하련다.

솔직히 가까이 가서 보면 뭐하랴 싶다.

 

도나 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여기서 상류 쪽에 기념물이 있어서 그쪽을 가려고 했는데 방해꾼이 나타나는 바람에 도나 구경을 많이 그리고 실컷 해야 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