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여행 2022

[부다페스트] 안드라씨 대로를 따라서(하)

정안군 2022. 6. 22. 01:13

두나를 따라서 긴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두나 유람선은 아픈 기억이라서 타고 싶은 마음은 없다만 보기에는 멋진 풍경이다.

 

벤치에 앉아서 다리로 쉬고 경치 관람을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인간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딱 보면 알겠더라,

그들이 어떤 종자들인지.

유대인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가려는 곳에 가서 무슨 행사를 하려는 듯.

그러더니 경찰이 그쪽으로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왜 안 된다고 하니 잠시면 갈 수 있으니 기다려 달란다.

제네들은 되고 나는 왜 안 되냐 해도 그냥 막무가내.

도로도 경찰차로 막고 도나에도 배가 감시를 하기 위해 떠 있었다.

짜식들.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무서우면 착하게 살아야지.

 

영어로 진행하는 것을 보니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인 듯 보인다.

잠시가 10여 분이라고 한 것 같은데 한참을 기다려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덕분에 다리 쉼을 길게 가졌다.

 

바람이 몹시 불어 큰 건물 쪽이 괜찮을 것 같아 그쪽으로 이동하여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통행도 못 하게 하더니 잠시 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통제하지 않았지만 구경하려고 멈추거나 하는 건은 절대로 못하게 했다.

 

부러운 이들.

유로 벨로 6이 부다페스트를 통과하기 때문에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나이도 제법 드신 3인조가 풀 세트 무장을 하고 여행하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운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행사가 끝나고 내가 원하던 장소에 갈 수가 있었다.

 

EJA라는 협회에서 해마다 하는 행사인 듯하다.

아마도 유럽 유대인 협회의 약자가 아닐까 싶다만.

살고 번성하기 위한 자유는 이해가 간다만 증오로부터의 자유라.

너네들이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나 있냐?

 

이 장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권력을 잡았던 애로우 크로스(화살 십자가) 당이 나치와 협력하여 유대인들을 학살하던 곳으로 어떻게 그들을 처리했는지는 영화 무직 박스에서 소개가 되었다.

주인공 앤(제시카 랭)이 헝가리 당국과 미국 이민국의 요구로 비자가 실효되어 추방될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변호에 나서는데 차츰 이 애로우 크로스가 저지른 행위에 치를 떨게 된다.

하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아버지가 설마 애로우 크로스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그들은 유대인들을 도나 강변으로 데리고 와서 아이들 앞에서 부모를 처형하여 강물에 던졌고 배 아래 대검을 꼽아 놓고 풋샵을 하게 하여 지쳐 찔려 죽으면 이들도 강물에 처넣고.

여자를 강간하고 기절한 후 다시 깨어나면 다시 강간하고.

그런데 그런 애로우 크로스의 책임자가 바로 자기 아버지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 증거인 사진을 검사에 보내어 아버지를 법의 심판대에 서게 한다는 내용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묶여 살 것인가 이제는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든지 과거의 행위를 반공이라는 틀로 위장해 자기의 과거를 잊게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현실과 비슷한 면도 많아 감동이 되는 영화였다.

 

유대인들이 신었던 신발은 그 당시 고급이라서 값이 많이 나가니 신발은 벗게 하고 처형을 시켰다 한다.

그래서 그걸 상징하여 이런 신발을 만들어 기억을 살리려 하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신발도 아니지만 하나하나가 한 생명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이런 아름다운 도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삼켰다고 생각하니 도나가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하긴 우리나라 한강도 마찬가지겠다.

 

행사에서 피운 촛불.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한을 풀고 영원히 평안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했다.

그리고 당신 후손들이 저지르고 있는 새로운 살인과 증오를 멈추게 빌어 달라고.

 

슬프고 아픈 기억들.

하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투르키에에서는 시리아 난민이 이곳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그리고 여기서 희생된 유대인 후손이 만든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난민 아닌 난민으로 살고 있다.

독한 며느리가 나중에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이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 말일까?

 

다음은 국회 의사당이다.

이 친구도 한 덩치 하는데 이 안에 계시는 분들이 그 덩치에 알맞은 일들을 하시는지는 모르겠다.

어디나 국회의원들은 뭐하는지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아니면 우리나라만 그런가?

열심히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바람이 불면 되고 그 바람이 멈추면 떨어지고.

누군가 우리나라 정치도 오징어 게임을 닮았다더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앞에서 보면 더 크다.

사진에 담기도 힘든.

여기는 의원 나으리가 몇 분이나 계시는 데 이렇게 큰 건물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코슈트라는 분의 상이라네.

코슈트 러요시(Kossuth Lajos)

헝가리는 우리와 같이 성이 먼저 그리고 이름이 나중에 나온단다.

그래서 코슈트가 성이 되시겠다.

무슨 일을 하셨는지 궁금하면 구글에 물어보시라.

굳이 남 나라 위인을 우리가 다 알 필요가 없다는 데 한 표.

 

이런 질고에 빠진 백성을 잘 이끌고 가셨다는 스토리 같네만.

여기는 코슈트 상이 있는 뒤쪽이다.

 

이 분은 또 누구신가?

코슈트 광장에 있으니 그분이지 싶은데 석상의 인물과 분위기가 영 다르니 자신이 없네.

역시 구글.

라코치 페렌츠 2세(Lakoczi Ferenc 2)라네.

이 분 소개도 구글에 맡기세.

그런데 코슈트 광장이라고 해 놓고 이 분 동상을 세우면 코슈트 체면이 말이 아닐 텐데.

하긴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의사당 맞은편에 있는 이 건물도 거창해서 찾아보니 민족박물관이라고.

헝가리의 민속 의상, 전통 수공예품 등이 잘 진열되어 있다 하니 관심 있는 분의 많은 관람 바라는 것으로 대신한다.

 

대충 숙소를 떠난 지 3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났으니 이제 귀가합시다.

귀가는 다른 길로 걸어서 가 볼까 하다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 근처에 있는 지하철로 결정.

교통 표는 10장 한 묶음을 사면 좀 싸기에 그렇게 사놓아 넉넉한 편이었다.

지하철을 타러 지하로 들어가는 과정은 다이내믹했다.

엄청 빠른 에스컬레이터에 무지 깊은 지하.

지하철을 타고나서 교통 표를 어디다 찍냐고 물어보니 아웃사이드란다.

뭐여?

얼른 나와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가니 거기에 펀칭 기계가 있었다.

분명히 안 찍고 탔는데 입구에 두 명이나 직원이 있었건만 무사통과했다는 말.

교통 시설을 이용할 때 스스로 알아서 펀칭을 하지 않으면 클 난다 하니 나처럼 꼭 하시라.

 

지하에도 어떤 분이 개와 함께 계셨는데 이제는 이 분이 누구신지 찾을 기운이 없다.

그냥 훌륭하신 분으로.

설마 그렇지 않은 분을 동상으로 만들어 전시하겠어?

 

그렇게 일단 숙소로 귀환.

했더니 아내가 뭘 살게 있다고 다시 나가자고.

순종 파인 나야 당연히 예스 마담.

종일 숙소에 있었으니 당연히 나가고 싶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같이 나가 준 나는 착한 마음이라는 것에 여섯 표.

 

우선 간 곳이 부다페스트에 오자마자 단골이 된 아시아 마켓.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정말로 없는 게 없다.

아무튼 중국인은 좀 성가시긴 한데 이런 때는 꽤 쓸모가 있다.

이들이 모여 살면 우리 식품을 구하는 것이 편해지니.

여기에 김포쌀도 있어서 며칠 전에 사다 먹었더니 정말 김포쌀로 한 밥 맛이었다.

김치도 종류 별로 다 있긴 한데 좀 묵어서 많이 시더라.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잘 먹었으니 뒷말은 안 하련다.

 

혹시나 기차로 나들이할 일이 있을까 싶어 기차역에 가 보았다.

여기는 부다페스트 케레티(Keleti)역이다.

케레티가 별 게 아니고 동쪽을 말하니 그냥 부다페스트 동역이 되시겠다.

부다페스트는 기차역이 몇 군데 있다 하는데 여기는 국제 열차도 다니는 그러니까 메인 역이다.

여기 올 때는 비엔나도 가보려 했으나 체력과 시간 관계 상(라고 쓰고 돈 관계라고 읽는다) 포기.

역 안에는 여러 방면의 기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유럽의 다른 나라처럼 기차역에 드나드는 것은 자유.

투르키에처럼 어디를 드나들 때 검문 걸차가 없으니 얼마나 편한지.

 

그런데 이 동네 골목길을 걸어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겼다.

길거리에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어인 일인지 개 오줌 자국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아침에는 살수차가 다니면서 물까지 뿌리더라고.

으슥한 곳은 말한 것도 없고 버젓이 도로변 건물 벽에도 분명한 자국들.

이상하다.

설마 사람이 그랬을 리는 정말 없을 테고.

혹시 밤에만 돌아다니는 개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 아닌지.

난 모르겠네.

 

아무튼 오늘은 모처럼 원 없이 걸었더니 22,000보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