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월드컵이 끝났다. 월드컵 공식 기록에서 승부차기는 무승부로 기록한다니까 기록상으로는 무승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세상 사람들은 그 과정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우승국 이탈리아만 기억할 것이다.
그 결승전이 열린 곳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다. 제국의 수도였으나 패전 후 분단되면서 수도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변방의 도시로 존재하다가 통일이 되면서 화려하게 유럽 역사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그 도시.
내가 공업교사 연수단의 일원으로 그 베를린을 다녀 온지 어언 10년이 다 되었다.
1997년 8월 3일 베를린에 들어가 29일 오후에 떠났으니 거의 4주를 보낸 셈이다.
해외여행은 그 때가 두 번째였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큰 충격이었다.
그곳에서 일본의 크기를 알았으며 유럽 문화의 깊이 그리고 삶의 질이란 개념을 처음 얻은 곳이기도 하다.
새천년 2000년이 되면 다시 독일을 방문해보고 싶었던 꿈은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에 밀려 접은 지 오래. 그러나 독일 월드컵을 보면서 그 때 그곳에서 느꼈던 생각의 기록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10년은 말 그대로 천지가 개벽하는 시간이지만 유럽에서의 변화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리다. 10년 전 그곳의 생활방식은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도시 운영 시스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식이 세계 표준이 되어 전 세계에 강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자기 자신들의 표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독일을 다시 생각하고 싶다.
1997년 봄 우연히 도교육청에서 온 공문을 보고 강한 느낌을 받는다.
‘아!!! 이것은 나를 위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구나.’
공문 내용은 공업계 교사 해외 연수단을 선발하는데 기간은 4주이고 나라는 아직 미정이나 미국이나 독일이 될 것이란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영어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것. 영어 교사보다야 못하겠지만 공업계 교사 중에서는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온 나로서는 반가운 장면이다.
중학교 2 - 3학년 수준의 영어 시험을 거쳐 선발된 나는 추후 연락을 통해 연수지는 독일 베를린이라는 것을 알았고 6월 서울 두산 연수원에서 열린 선발 교사 협의회에 참석하여 같이 가게 되는 각 도 대표 선생님들과 만나게 된다.
연수단은 15명으로 단장은 교육부 이 장학사, 그리고 서울 대표 서울공고 조, 북공고 이 선생님, 부산동의공고 이 선생님, 강원도 원주공고 조 선생님, 대구공고 강 선생님, 광주 치평 중학교의 나 선생님, 인천 부평공고 김 선생님, 경기도 안양공고 박 선생님, 충남 천안공고 박 선생님, 경북 경주공고 김 선생님, 경남 김해건설공고 정 선생님, 전북 전주공고 최 선생님, 전남 순천공고 김 선생님 그리고 충북 충주공고에 근무하는 나.
전국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각 곳에서 모였다 하지만 연줄연줄 걸다보면 개개인별로 씨줄 날줄이 잡히기 마련이다. 대충 얼굴 익히기가 끝나고 연수 중 업무 배정과 연수기간 중 주말여행 계획에 대한 협의가 시작되었다.
지난해까지는 4주 연수 후 1주일을 유럽 여행기간으로 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에 대한 연수단내에서의 갈등은 많은 문제점을 가져와 이번에는 그 여행기간이 생략되었다. 그래서 현지에서 주말 여행으로 이용할 수 있는 주말은 3차례로 줄었지만 유럽은 금요일 오전으로 업무를 마치니 잘 활용하면 꽤 도움이 된다.
나와 젊은 층 교사들은 3번 모두 자유 여행으로 각자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가자고 했고 단장을 포함한 나이든 층은 패키지를 이용한 여행을 주장했다.
결국 여러 가지 논의 끝에 처음과 두 번째 주는 패키지로 파리와 체코 프라하를 다녀오기로 하고 마지막 주는 자유 여행으로 결론을 맺었다.
출발하는 날. 13시 45분발인데 집합 시간은 10시였다. 패키지를 이용해서인지 여행사 직원이 나와 우리 출국 수속을 도와주었다.
출국 수속을 위해 나서는데 소동이 일었다. 한 선생님이 여권을 자기 짐에 넣어 부친 것. 전에 만났을 때 미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던 그 선생님이다. 여행사 직원이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 덕에 짐을 다시 열어 여권을 꺼내어 왔다. 미국 다녀 온 것 맞아???
여행 성수기라서인지 공항에서 지체가 많이 되어 14시 10분 활주로에서 이륙한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여정. 긴 하루였다.
앞자리는 어린 청소년들. 물어보니 덴마크 요트 유스 팀. 일본에 시합이 있어서 왔다 돌아가는 중이란다. 중학생들이라는데 영어가 일품이다.
안데르센을 물어보니 자기네들끼리 끽끽거리며 상의하더니 ‘앤들슨’이란다. 그래 안데르센이 남 나라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우리는 일본의 영향이 크다. 소설 파랑새의 ‘찌르찌르’와 ‘미찌르’는 ‘틸틸’과 ‘미틸’이라던데 일본 번역물을 다시 옮기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난 듯하다.
현지 시간 18시 20분 이번 월드컵으로 유명해진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다. 지금은 서머타임으로 7시간이 차이나지만 그 때는 시차가 8시간이었으니 우리 시간으로는 벌써 하루가 지난 것. 다시 베를린으로 향하는 루푸트한자 국내선을 타기 위해 이동한다. 기계과 팀과 같이 온 탓에 30여명이 우왕좌왕하다가 다행히 우리나라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베를린 국내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좌석은 3열, 3열 방식. 내 자리는 중간이다. 왼쪽 옆은 할머니, 오른쪽은 O. L
영어를 가동해보자!!!! 처음 말을 시작할 때는 날씨 이야기가 좋다고 했던가?
"What's the weather like today in Berlin."
“Sorry. What?"
갑자기 당황된다.
“The weather, climate......"
"I don't know." 하면서 나도 베를린에 가는 중인데 어떻게 알겠느냐고?????
맞긴 맞는 이야기인데 영 표정이 왠 촌놈이 말을 거느냐하는 정도다.
에이!!! 관두자.. 1시간의 비행으로 베를린에 도착한 시간은 20시 40분. 아직 어둡진 않다. 위에서 본 베를린은 숲속의 도시이다. 고층 건물은 거의 없고 도시 속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닌 숲속에 건물 몇 개씩이 흩어져 있는 느낌이다.
베를린 테겔공항은 시골스럽다.
짐을 찾아 밖에 나오니 연수단을 맞아주는 박 박사와 전 선생. 박 박사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분이고 전 선생은 통역으로 활약해 주실 분.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연출된다. 내용을 들어보니 충남에서 오신 선생님 누이가 이곳에서 살고 있단다. 자형과 함께 나왔는데 이 누이는 30년 전에 이곳 독일에 간호사로 오셨다가 이곳에서 정착하셨단다. 그 후 한번도 한국에 왔다 간 적이 없어 동생을 30년 만에 만나는 것. 충남에서 오신 박 선생님도 초로의 연세였는데 어려서 헤어진 남매가 늘그막에 다시 만났으니 그 감격이 오죽 하랴. 그 부부는 한 달 동안 우리와 거의 같이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많은 이해 충돌이 있게 된다.
숙소에 도착하니 01시 45분. 우리나라 시간으로 하면 날밤을 꼴딱 세운 셈이다.
일행 숙소는 3곳으로 나누어졌는데 숙소가 있는 곳은 Rue Diderot(류 디데로)라는 곳이다, 숙소가 있는 지명이 프랑스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이곳은 통일되기 전 프랑스 장교 숙소였단다. 전쟁 후 4개국으로 분단된 독일은 영국, 프랑스, 미국의 영토는 서독으로 소련이 점령한 곳은 동독으로 갈라지는데 이 베를린도 그렇게 분단되었었단다.
<우리 숙소가 있던 곳과 인터넷 지도에서 찾은 Rue Diderot(류 디데로) 지역>
우리가 있는 숙소는 연립주택 형식인데 방이 4개이고 응접실, 화장실과 샤워실 겸용 2개, 화장실 하나,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은 넓지는 않지만 공간 활용은 잘 된 듯하다.
늦은 시간이라 바로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나는 서울의 조 선생님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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