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연수기

말스도로프 종합학교 방문

정안군 2006. 7. 15. 09:12

조금씩 시차에 몸이 적응되어간다.   연수 일정이 빡빡하게 진행되어서 몸이 피곤하여 적응이 더 쉬운지도 모르겠다.

 

보통 8시에 숙소 앞에서 모여 이동하는데 아침밥하고 먹고 치우다 보면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같아서 아침 식사는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반찬은 이것 저것 있으니 밥과 국만 하면 되는 것이라서 별 문제는 없지만 국이 맛이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들 맛있단다.   그렇담 고맙지요.... *^^*

 

오늘은 말스도로프(Mahlsdorf)라는 구 동베를린 지역 작은 동네의 종합학교(Gesamtshule)를 방문한단다.

 

<학교 앞에서>

 

독일의 교육 체제는 각 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교육 과정은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이 유치원을 일컫는 보편적인 용어로 정착할 만큼 현대 유아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취학 전 교육은 3세부터 가능하다.


6-10세 어린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초등학교인 그룬트슐레(Grundschule)에 다닌다. 그룬트슐레를 마친 뒤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과정으로 각자의 진로가 갈라진다.


그 다음 과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주요학교(Hauptschule)

기초학교 졸업생의 약 30% 정도가 사회적 위신과 학업수준이 낮은 주요학교에 진학하며 5학년부터 9학년 까지 5년제 학교. 보통 교육을 실시하는 주요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교로 졸업 후 직업생활에 기초가 되는 내용을 교육하며, 직업교육을 받을 때 도움이 되도록 한 가지의 외국어(대개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졸업 시험은 없으며, 이후 직업 전문학교에의 입학이 가능하다. 근래에 이 주요학교는 점차 인기가 떨어져 쇠락의 상태에 있다. 더욱이 주요학교는 학업 성적이 아주 낮은 학생이나 이민 온 아동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현재 개혁이냐 폐쇄냐 하는 논쟁에 휘말려 있다.


 실업학교(Realschule)

초등학교 졸업생 중 20% 정도가 진학하는 실업학교는 주요학교와 김나지움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 수준. 이 학교는 대학진학과는 직접 관계없는 중등학교 형태로 현재 약 1/3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적어도 한 개의 외국어는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며, 보통 제 2외국어도 가르친다. 현재 이 학교는 고등 교육기관으로 연결되는 경로로서의 기능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김나지움(Gymnasium)

독일에서는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은 김나지움에 입학. 김나지움을 이수한 학생은 독일 모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는 아비투어(Abitur)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5학년부터 13학년까지의 9년과정이며 독일의 전통적인 인문계 고등학교로 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을 준비시킨다. 5-10학년은 중등 1단계, 11-13학년은 중등 2단계로 구분되며 교육과정은 학교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김나지움은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현대어, 고전어 그리고 수학 및 과학 김나지움이 그것이다.


 종합학교(Gesamtschule)

주요학교(Hauptschule), 실업학교(Realschule) 김나지움 (Gymnasium), 세 학교 형태들을 혼합한 종합학교.


기초학교 졸업 후 주요학교, 실과학교, 김나지움 등의 3단계식 학교제도는 호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즉 많은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하고, 또 후에 잘못 내려진 결정을 수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보완책으로 1970년대 초에 사민당의 주도로 생겨난 것이 종합학교이다.


그러니까 오늘 방문하는 학교는 종합학교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 성적에 의해 진로를 결정해버리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만든 학교인 셈이다.


독일은 직업 귀천이 없어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보다 편하고 대접받는 직업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기존 시스템이 도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어린 시기에 성적에 의해 자기 진로를 결정해준다는 시스템은 교육학자들에 의해서도 지적 대상이 되어 반발의 강도를 줄이기 위해 변명 거리를 만든 셈이라고 할까?


지금도 성적이 좋지 않은 이민자 자녀들이나 빈곤층 자녀들이 주요학교나 실업학교에 가도록 교사들에게 제시되고 있어서 사회 문제까지 되는 형편인가보다.


어느 나라나 특권 세력이나 부유층 자녀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편하고 대접받는 직업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고자 교육 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지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똑같은 것 같다.


비테나우에서 U8을 타고 옛 동베를린 지역인 Alexander platz로, 거기에서 S5로 갈아타고 정말 한참을 간다.

 

확실히 동베를린 지역은 쇠락한 분위기가 진하다.   변두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스도로프에 도착하여 학교를 찾아가니 거의 찾는 이가 없어서 인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하다.   짧은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학생에 담배 달라고 과감히 말하는 꼬마도 있고.   여자 학생들은 피어싱에 대한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쵸역 마약 아이들이 피어싱을 하고 있어서 새롭지는 않았지만 이곳 중학생 정도의 애들이 한 정도는 동양에서 온 우리 선생님팀에게는 충격 수준.   귀, 코, 눈썹, 위아래 입술에다 심지어는 혓바닥에 까지 한 애도...

왜 혓바닥까지 피어싱을 했냐고 물어보니 자기 남자 친구와 키스할 때 남친을 놀래켜 줄려고 그랬단다.   갈수록 내공의 깊이가 느껴진다.


우선 몇 팀으로 나누어서 수업 참관을 하도록 했다.   내가 소속한 팀은 독일어 수업을 선택했는데 남학생 2명, 여학생 9명이 하는 수업이다.   높낮이 조절 칠판말고는 다른 보조 교육 수단은 없는 단출한 분위기이다.  

학생들은 먼 동쪽의 나라 선생님들이 참관하고 있어서 긴장한 분위기이다.   독일 소설가에 대한 토론 수업인데 독일어를 알 수 없는 우리들은 그저 따분한 분위기.


나중 수업이 끝난 후 영어로 몇 가지 질문을 하니 선생님은 러시아어를 배워 영어는 잘 못한단다.   아마도 동독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대신 영어를 잘하는 여학생이 나서서 대답을 해준다.   우리들이 독일어 수업을 참관해서 독일어를 잘 하는줄 알았던 모양인데 완전 독일어가 깡통인 것을 알고는 상당히 재미있어 했다.   괜히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쫄았다는 분위기.   보통 독일학생들이 영어를 잘 한다고 들었었는데 이곳의 아이들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교장 선생님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수업이 없는 교실의 문을 잠근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빈 교실에서 학생들이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 미리 예방하는 차원이라나?


교장 선생님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과거 동독의 고위 공무원이나 기관원들이 거주하던 곳이란다.   그래서 그들의 교육 수준도 꽤 높았었고.

 

그런데 이들에게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 통일 후 이들은 대거 실직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   잘나가던 옛날 생각에 집안에 처박혀 술로 세월을 보내는 이들과 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자녀들과의 대화 단절은 당연히 문제 학생들을 만들어 낸다.

 

구 서독과 동독의 제도차가 갑자기 없어지면서 적응하기가 힘들어진 한 세대의 희생물인 이들은 부모 이혼과 미래 직업 확보에 대한 불투명이 학습 의욕 상실로 이어지면서 많은 국수주의 폭력 서클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흡수된다.

 

지역에는 회귀 바람이 불면서 구 공산당 출신이 구청장에 당선되고 그 와중에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교장에게 흡수 통일이 남긴 문제점을 물어보니 동독 통화의 불인정과 체제의 불인정을 들었다.

물론 서독의 제도도 좋지만 동독의 제도도 좋은 점이 많았다고.   그러나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던 모두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는 교장.

 

동베를린 시절에는 교사 1인당 학생 수 22명 이었는데 통일 후 29명으로 늘어나고 재정 지원이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단다.

 

말하는 중에 교원노동조합 이야기가 있었는데 통일될 때 베를린 주변의 작센주에서는 동독 출신 교사 100여명이 해고되었었단다.   그러나 베를린 지역에서는 서베를린 교원노동조합이 동베를린 출신 교사들을 노동조합에 가입시켜서 일방적으로 해고할 수 없는 신분으로 만들어서 그들을 구제해 주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아 그래서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필요하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갔는데 숙소에 와서 식사를 하는 중에 나이가 든 교사분들은 그 말을 들을 때 아 그래서 노동조합이 빨갱이 소리를 듣는구나 라고 생각했단다.


같은 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남을 느낀 에피소드였다.


교장은 마지막으로 말하기를 통일은 분명히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한국에도 통일의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되 천천히 서두르지 말란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은 좋은 예를 하나 미리 본 셈이다.

청바지 차림에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로 발가락 끌신을 신고 다니면서 열쇠 꾸러미로 문단속 하던 교장 선생님. 우리나라의 교장 스타일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것으로 오늘 일정은 끝.

 

최선생과 운터 덴 린덴 거리로 나왔다.   갑자기 생긴 화장실 볼 일.   이곳저곳 찾아다니다 들어간 호텔.   겉은 그저 그런데 일단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함의 극치이다.


속으로는 쫄았지만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며 호텔 웨이터에게 화장실을 물어 찾아 갔는데 화장실은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화려했다.

금장식을 한 수도꼭지의 화려함과 대리석의 조화!!!!

 

음메 !!! 기죽어

호텔 로비와 옆 식당인 듯한 시설에는 검정 슈트를 입한 그야말로 신사들과 이에 어울리는 차림의 숙녀들...


아!!! 이렇도록 유럽의 부자들은 숨어서 자기들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구나...

나와서 호텔 이름을 보니 ‘ADLON 호텔’   나중 마이클 잭슨이 자기 아이의 발을 잡고 이층 창문에서 떨어뜨리려는듯 흔들어 수많은 기자들을 놀래킨 바로 그 호텔인데 하루 밤 자는데 최고 천만원 한다는 그 최고급 호텔을 화장실을 찾다가 가보는 기막힌 날이었다.


그 당시는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고 그저 좋은 호텔인가보다 정도...ㅋㅋㅋ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기념비가 있다.   안내서에 소련군 베를린 점령 기념비로 되어 있는 곳.   분명 러시아 사람일 늙은 아저씨가 군복차림으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말을 걸어보니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어댄다.   아마 자기는 영어나 독일어는 모른다는 표현인 것 같다.  

 

그 뒤편은 부대 주둔지 같은데 소련 부대 주둔지가 아닌가 싶었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패전의 아픈 기억일 것이다.


제국의회는 공사 중이었다.(지금은 완전히 재 완성되어 의회로 사용 중이다)   이곳은 2차대전 말기 치열한 시가전에 소련군이 점령하여 소련기를 게양한 곳이기도 하다.

 

도중 비가 왔는데 날이 건조해 바로 마른다.   습도가 높질 않아 걷기에 참 좋은 곳이다.

<제국 의회>

 

다음은 100번 버스를 타고 우리의 영원한 나와바리 쵸역앞으로...

 

다시 한번 사파이어 블루를 감상하고 싶어 카이저 빌헬름 교회로 갔는데 청소년들이 교회 문 앞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문을 가로 막고 있어서 미안한 표정이지만 문 옆의 그림들은 그들이 술 먹고 어떻게 용변 처리를 하는지 잘 말해준다.


독일 하느님은 우리 한국의 하느님보다 더 참을성이 많으신가보다.   이렇듯 교회에다 대고 갈기는 아이들을 보고도 잘  참으시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