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일정은 다른 패키지 여행팀의 일정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서 별 특징이 없고 사진별로 소개하는 정도로...... .
개선문인데 나폴레옹이 로마 황제 흉내를 내고 있는 모습이 개선문 벽에 장식이 되어있다. 유럽에서 가장 이상적인 나라상이 로마인듯하다. 사실 파리 개선문도 로마 황제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뒤 세운 개선문을 흉내낸 것.
로마가 동 서로마로 분할되고 얼마 안되어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침입에 의해 멸망한다. 그 뒤 뒷배경을 잃어버린 로마 교황은 서로마가 멸망한 뒤 그 자리를 대신한 게르만 왕국의 왕을 황제로 삼아 황제의 관을 씌워준다.
그 뒤로 선출이나 교황의 입김에 의해 이어지던 황제의 관은 주로 독일을 나누어 지배하던 각 공국의 왕들이 차지하였으나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이 근근히 이어오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틀을 깨뜨리고 자기가 대신 황제가 된다. 그러니 자기가 로마 황제의 정통을 이은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을 수 밖에.
아무튼 로마가 유럽 사회에 남긴 영향은 막대한데 그 로마의 상징이었던 독수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동로마를 상징하던 쌍두 독수리는 그 뒤를 이었다는 러시아가 승계하여 자기 문양으로 삼았고 서로마의 독수리는 이탈리아의 무쏠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그리고 미국의 독수리 문양에 심지어는 우리나라 경찰을 상징하는 것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로마는 없어졌으나 독수리는 로마의 힘을 상징하는 증표로 남아 이곳 저곳의 나라에서 애용되고 있는 셈.
개선문에는 프랑스가 벌렸던 대외 전쟁터의 이름과 장군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저기에 꽤 많은 것을 보면 전쟁도 퍽이나 많이도 했다.
옛날 전쟁은 귀족들의 스포츠라더니 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개선문은 안의 계단으로 해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노틀담 성당의 앞>
<노틀담 성당의 뒷모습>
영화 노틀담의 곱추로 유명한 성당. 앞에는 순교한 성인들의 상이 서 있는데 파리의 수호 성인이라는 생 드비는 잘린 목을 들고 서 있는데 그가 갔다는 천국에서도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단순한 앞의 모습에 비해 뒷모습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다. 노틀담 성당의 앞은 우리나라 명동 성당앞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국사람들이 많았는데 역시 여름의 유럽은 우리나라 인기 No.1여행지임이 이런 곳에서 알 수 있다. 알려진 곳은 바글바글, 코스에서 벗어난 곳은 찾아 보기 힘든 한국인들... *^^*
<에펠탑이 보이는 테라스 - 히틀러도 여기서 사진을 찍었단다>
<룩상부르 공원 - 잔디가 참 좋더군요>
<베르사이유 궁전 앞>
<멀리 프랑스 중부 대평원이 보이는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
파리의 여름철은 파리 시민들은 다 바캉스가고 관광객이 그 빈 파리를 지킨다더니 정말 어디 가나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그 입장료만 가지고도 프랑스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을 듯.
옛날 임금님 시절 많은 민중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많은 궁전들은 그 후손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으니 그 시절의 그 일들은 득인가 독인가???
시내 중심가의 도로는 돌을 박아 만든 것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차량이 튀어 승차감이 상당히 떨어지는데 그 전통을 잘 지켜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하게 현대 기술을 도입하여 만든 에펠탑이 파리 중심가에 서있으니 과거와 현대의 조화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이 곳 파리 사람들이 보여 주고 있는 듯 했다.
여기 저기 끌려 다녔으나 모두 수박 겉핥기. 무엇을 느끼고 감상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돌아 친 르브루 박물관. 모나리자나 비너스 상은 이곳에 왔다 갔다는 증명으로 그 역할을 하는 듯하고. 진만 빠져서 돌아간다. 역시 여행은 하루라도 젊었을 때 해야 된다. 에고 허리야 ^^
한 한국식당에서 단체객을 만났는데 미용사 아니 헤어 디자이너팀이었다. 이들은 파리에서 3일동안 연수 과정이 잡혀 있단다. 그 연수를 마치면 수료증을 받게 되는데 그 수료증은 이들이 한국의 자기 미용실로 돌아가면 훌륭한 장식물이 된단다. 자기 실력으로 승부가 되지 않고 이런 허상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지만 어찌 이들 뿐이랴???
일요일 오후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갈 시간.
베를린으로 돌아갈 때는 한번에 베를린으로 가는 침대열차를 탔는데 우리 칸 옆에는 흑인 남자가 혼자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다른 쪽은 백인 여자 모녀였는데 왜 그리 흑인 남자가 무섭던지... 승무원에게 그 흑인 남자가 자꾸 기웃거려 무섭다고 했더니 승무원이 그 남자에게 뭐라고 하곤 ‘No Problem'이란다. 한참 있다 그 흑인이 우리에게 오더니 자기도 유러피언이란다. 좀 화가 났었나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편견이 흑인은 무조건 무서운 사람이었나 보다.
12시간의 긴 여행 끝에 베를린에 도착해서 한국 식당으로 가 아침을 먹고 일단 숙소에 간다. 오늘은 피로를 고려해서 오후에만 스케줄이 있단다.
오후는 오랜만에 기술대학에 가서 지형정보시스템(G.I.S)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강의를 한 사람은 이 대학교수이면서 개인회사격인 연구소 소장이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참 도입 중인 제도인데 아무래도 돈이 생기는 일은 더 열심을 내기 마련이라서 그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리라.
오후 일과를 마치고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던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 결승전이 열렸던 올림픽 스타디움에 가보기로 한다.
<베를린 올림픽 기념비 앞 - 파리에서 돌아온 직후라 파리 기념 T를 입고 있구만>
1932년 히틀러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자랑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는 베를린 올림픽에서 히틀러의 잔치에 재를 뿌린 재시 오웬. 우수한 민족성을 지닌 게르만 민족은 올림픽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정으로 열심히 그 우수성을 증명해 나가는데 그만 올림픽 100 m에서 우승한 선수가 웬 흑인??? 그 열등하다는 흑인이 육상의 꽃 100 m를 우승하다니... 히틀러 열 꽤나 받았겠다.
그래도 우리의 관심사는 식민지 조선의 얼을 세계만방에 보여준 손기정선수가 아니겠는가?
그 뒤 일장기 말소 사건 등 여파가 만만치 않았으나 마라톤 우승은 우리 민족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 손기정의 이름이 베를린 올림픽 광장 기둥에 새겨져 있다.
Marathon SON JAPAN
KOREA가 아닌 것이 아쉽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베를린 스타디움은 평지보다 낮은 위치에 운동장이 있어서 푹 파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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