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여 이야기

고향 나들이

정안군 2006. 9. 29. 17:56

아버지 산소는 산골짜기에 있습니다.

 

길은 좁고 동네를 통과해야만 하는 관계로 추석 때 성묘를 가면 우리 아이들과 한참을 걷곤 했었죠.   산소에 가까이 갈수록 주차할 공간도 없고 또 마주 오는 차라도 만나면 피하기가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멀찍이 차를 대놓고 걸어갔다 오는 것이 훨 나았습니다.

 

아이들이 크고 어머니는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가셔서 혼자 사시는데 언젠가부터 추석을 우리집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해서 적당한 평일을 골라 벌초 겸 성묘를 다녀오게 되었죠.   주말에 벌초를 가면 그것도 차 때문에 쉽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점점 더 꾀만 늘어갔군요.  *^^*

 

지난 해에는 큰 놈과 같이 갔었는데 올 해는 큰 놈은 군대를 가서 작은 놈을 데리고 갔습니다.   작은 놈은 멀미가 심해 차타기를 좋아하질 않는데 아들이 있는 사람이 혼자 가기는 그래서 같아 가자고 했지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충주에서 부여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길도 많이 좋아지고 바뀌었지만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산소 입구에 도착하니 아저씨 두분이 쇠말뚝을 박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소 밑에 도착해서 차를 두던 장소인데 쇠말뚝을 박아놓으면 차를 돌릴 여지가 없어집니다.

 

대략 난감 모드.

 

"죄송합니다만 그 안으로 차를 대 놓을 수 있을까요?"

 

사정은 이랬습니다.

 

원래 이 아저씨 땅인데 산소에 오는 사람들이 그냥 차를 대놓고하니 마치 공터처럼 여겨 자기들 권리를 주장하느냐고 말뚝을 막는다네요.

 

권리 주장한다는데야 뭐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내년부터는 이곳에 차를 둘 수 없으니 한참을 걸어들어와야 되겠더라구요.

 

이번만 양해를 구하고 차를 돌려 놓습니다.

 

<산소 입구 : 왼쪽편이 공터인데 죽 말뚝을 박아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아들과 정리된 길을 따라 산에 오릅니다.   아버지 산소는 교회 묘지에 있어서 그나마 관리가 잘 된 편입니다.

 

작년에 비해 신입생이 보이질 않군요.

 

멀리 아버지 산소가 보입니다.   다른 곳은 손질이 되어 있는데 당연하지만 풀 투성이이군요.

 

 

원래 묘는 이곳이 아닌데 교회 묘지가 바뀌면서 이장을 해 온 곳입니다.   앞에 있는 비석은 이장할 때 세운 것인데 비석공장으로 내가 가지러 갔었는데 비석에 새긴 성이 바뀌었더군요.  

 

 

원래 방씨인데 박씨로..

 

해서 급히 ㄱ 을 ㅇ 으로 바꿔 가져오니 이장 절차가 모두 끝나 있었습니다. 

 

 

 

이런...

 

 

작은 아들과 벌초를 시작합니다.   원래 낫질은 해본적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벌초하느냐 낫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지금도 서툴지요.   그러나 예초기는 사용도 못하고 묘도 아담 싸이즈니 낫으로도 충분합니다.

 

쉬엄 쉬엄 한 시간 정도하니 끝났습니다.

 

 

땅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오랫만에 머리 깎은 것처럼 시원하실까요?

 

산을 내려와 부여읍내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향합니다.   금성산 아래 부여박물관 앞 아파트인데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통학로옆입니다.   그 당시는 집 몇채있고 밭이었었는데 많이 바뀌었죠.

 

오늘부터 백제문화제라는군요.   정림사지 박물관도 개관한다고 합니다.   국보 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일명 백제탑)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옆에 있어서 늘 보곤 했는데 그곳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을 보고 돌아오는데 작은 놈이 부여구박물관을 보고 싶다네요.   건축을 전공했는데 아마 어디서 그 사연을 들었나 봅니다.

 

시간도 널널해서 가보기로 합니다.

 

옛날 경찰서 로타리 근처에서 부소산 가는 길에 박물관이 있었는데 그 길은 여전하지만 부소산 들어가는 길은 삼충사 밑으로 넓게 새로 만들었습니다.

 

옛길로 해서 부소산 입구까지 갑니다.

 

들어가려니 돈 내라는군요.

 

 

우리 소시적에도 돈을 받았는데 돈 내고 들어간 적은 당연히 없지요.   그냥 내뛰기를 한다든지 아님 개구멍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돈내라.   들어갈 것도 아니니 돌아섭니다.

 

 

담장 너머 부소산을 나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준 곳입니다.   초등학교 6년동안 소풍간 때때골이 있고 또 중학교 시절 학교 과외 땡땡이치고 놀던 장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데이트 장소...ㅋㅋ

 

 

 

 

바로 앞은 구박물관입니다.   지금은 무슨 연구소로 쓰는가 봅니다.

 

 

 

 

이 부여구박물관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것인데 그 당시 이 건물이 일본 신사 모양이라해서 논란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셔야 된다 그냥 쓰자 한참을 설왕설래하다가 그냥 박물관으로 사용했었지요.   실내는 상당히 좁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닌게 아니라 일본에 가서 신사들을 보니 지붕 모양이 이 건물을 많이 닮았습니다.

 

해서 변명하기를 김수근씨는 일본 신사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문화인데 그것을 채용했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죠?

 

도올은 딱 잘라서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서낭당이 건너가서 그렇게 거창 모드로 바뀐 것이 신사라구요.

 

저도 신사에 가보니 새끼 꼰 것을 건 것이라든지 우리나라 서낭당과 상당히 비슷하더군요.

 

 

 

그런데 일본 신사 건물 지붕 양식은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는 중국 남부에 살던 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태국 치앙마이쪽에 가면 보이는 건물 양식이라든지 중국 운남성에서 볼 수 있는 지붕 모양과 많이 흡사하거든요.

 

 

일본도 자기 민족이 어디서 왔는가 많은 논란이 있지만 중국 남부의 아시아 남방계가 원류이고 우리나라에서 대거 건너 온 아시아 북방계가 점령해서 세력을 넓힌 것으로 대충 정리가 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은 가 생각합니다.

 

 

김수근씨는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일본에서 흔해 빠진 신사의 건축 양식에 대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박물관 건너 발굴터입니다.   백제 시절 건물터라고 하네요.

 

 

외지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가겠지만 이곳에 살던 저에게는 여기는 아주 사연이 많은 곳입니다.

 

발굴터 끝자락에는 한 여학생이 살던 집이구요.

 

또 거기서 부소산쪽으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하던 시절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던 것만 같던 바로 그 시절.

 

 

뭇 사람의 시선을 피해 종종 놀러왔던 장소도 있습죠. ㅎㅎ

 

 

 

멀리 애드벌룬 떠 있는 곳은 구두래 나루인데 부여 청춘 남녀의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인데 나도 한 사연을 보탰구요.

 

 

 

왼쪽 붉은 지붕 건물이 있는 곳은 고등학교 시절 살던 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그 뒤 눈치밥을 오래 먹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그 때에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담임선생님이 문상오셔서 나에게 학교 계속다닐 수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나는 왜 그런 말을 왜 하는지 그 당시는 몰랐었지요.  

 

 

 

 

차츰차츰 커가면서 그 말을 이해하게 되지만요.

 

 

역시 고향의 의미는 대단하군요.

 

 

 

한 곳 한 곳도 그냥 지나가는 곳이 없습니다.

 

 

 

 

 

더 이곳 저곳 기웃거려 보고 싶지만 작은 아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산소 바로 위에는 잘 아시는 분 부부가 누워 계셨습니다.

 

 

아들이 셋이고 딸도 있는데 세상일이 바쁜지 벌초를 한 동안 안했다는군요.   해서 남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말을 했나 봅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나 죽거든 아버지 묘하고 해서 같이 화장을 하거라.   요즘 같은 세상에 벌초하러 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니.

 

괜히 나 위한다고 산소 만들어 놓으면 괜히 자손들 욕만 먹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 묘가 고향을 이어지는 유일한 끈입니다.

 

 

 

언젠가는 이 끈이 끊어지겠지만 지금은 놓고 싶지 않습니다.

 

 

 

 

올해 가보니 아버지 산소 위 부부 묘는 정리가 되었군요.

 

 

다른 곳으로 이장을 했는지 화장을 했은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곳과 이어진 끈을 끊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세월이 갑니다.

'내 고향 부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량사 광명식당  (0) 2012.05.05
만수산 무량사  (0) 2012.05.05
신동엽 생가가 부여에 있답니다.  (0) 2012.05.05
부여 장날   (0) 2012.05.05
희미한 옛 기억의 그림자  (0) 201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