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치앙라이에서 살아보기 모드로 제대로 들어간다.
넘쳐나는 과일과 다양한 먹을거리가 치앙라이의 장점이지만, 특별히 볼거리가 부족한 것이 이 동네의 단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이제까지 몇번 치앙라이에 왔었지만 다른 일에 바빠 그냥 무시하고 지나 갔던 먼저 왓 쁘라 깨우를 찾아 가보기로 한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 10여분 걸으면 되는데, 사실 치앙라이 중심가는 범위가 넓지 않아 왠만하면 다 걸어서 접근이 가능하다.
쁘라 깨우 근처에 가니 이렇듯 치앙라이 관광 포인트를 담은 안내판이 있었다.
불교가 대세인 나라답게 대개가 절이다.
여기가 치앙라이에서 제일 유명한 명승지(?) 왓 쁘라 깨우 되시겠다.
그런데 안내판에 여러 나라 말이 보이는데, 한국어는 없네?
아직 치앙라이에서는 한국인이 대세가 아닌 모양이다.
한자로 옥불사(玉佛寺)라고 표시한 것처럼, 이곳은 옥 부처님으로 유명한 곳이다.
수도 방콕 왓 쁘라 깨우의 옥 부처님이 원래 이곳에 계셨다고.
사실 더 원래는 라오스 루앙 프라방에 있던 것으로 이곳으로 옮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기는 본당인가보다.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곳은 불당이다.
이런 황동(?) 부처님이 계신 곳.
더 안쪽에 이 절의 주인공인 옥 부처님이 계신 불당이 있다.
태국 젊은이들이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는 중.
색깔이 신비롭다.
옥 색깔에 맞춰 주변 색도 조정한 듯 보인다.
유명 관광지(?)답게 외국인과 내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좀 불경한 생각이지만, 이 부처님 엄청나게 비싼 분이겠는 생각이.
금과 옥의 조화였다.
잘 꾸며진 정원 구경도 좋고, 또 공짜라서 더 좋고, 경내 박물관 구경도 괜찮다.
사실 크게 볼 것은 없지만, 어쨌든 이곳은 공짜라는 거.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버블룩 병원이 있다.
꽤 오래된 건물도 있고 현대화 된 건물도 보이는데, 예수 재단에서 설립한 곳이란다.
이 오버블룩(둑방 넘어) 병원은 결국 선교의 터전이 되어 그래도 조금씩 보이는 이 지역 교회의 모체가 되었을 듯.
문화회관 뒷쪽인데, 동상의 이름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실까?
혹시 왕족인가?
그 옆에는 독특한 기차 도서관이 있다.
안에는 냉방이 빵빵하니 이 근처를 배외하다 더위에 지치면 잠시 발걸음을 옮겨도 좋겠다.
허나 책은 모두 태국어로 되어 있는 것만 있어서 유감스럽게도 볼 수 있는 책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컴퓨터는 한국어 표기가 되더라고.
문화회관 앞쪽이다.
꽤 깔끔한 모양의 건물이다.
월드 비젼 건물이 있었는데, 한국 월드 비젼과 관계가 있을까?
저녁에 라자빳 대학교 근처의 한 선교 센터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이 동네에 정통한 선교사분을 우연히 만난다.
그 분과 다음 날 만나서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을 했는데, 다음 날 약속 장소인 라자빳 대학까지 성태우를 타고 가니 은퇴 목사님 부부를 모시고 오셨다.
그 뒤로 그 분 신형 차로 이틀을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
첫 날 제일 먼저 간 곳은 리앙라이 북쪽 매싸이 근처 천연 풀장이다.
마침 근처 신학교에서 놀러온 태국 젊은이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입장료는 무료.
물은 좀 더러워보이지만 흙탕물이라서 그렇고, 산에서 바로 내려 오는 것이라서 오염이나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먼 곳이다.
색깔만 더 고우면 끄라비 근처의 에메랄드 풀장과 뭔 차이가 있으랴 싶었다.
여기는 매싸이에 있는 태국 최고 북쪽 포인트인데, 바로 너머가 미얀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국경 감각과는 전혀 다른.
바로 이 너머가 미얀마.
한 청년은 국경을 아무런 제재도 없이 자유스럽게 넘어 다니면서 고기를 잡더라고.
참 부러운 장면이었다.
남북이 만나지도 못하고 서로 남 탓하는 우리 한반도 현실을 보면, 더욱 더 부러울 수 밖에 없는.
매싸이에서 멀지 않은 왕비 모친 정원과 산악 지대에 사는 아카쪽 마을도 방문해 보는데, 아카족 마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도이 뚱과 매싸이가는 삼거리가 나왔다.
여기서 매싸이가는 길은 국경선과 접한 산길이라던데, 시간이 늦어서 통행이 금지되어 갈 수 없어 좀 아쉬웠다.
언젠가 자전거로 이곳에 와서 달려보면 힘도 들겠지만, 꽤 재미있을 듯한 곳이다.
오늘 MTB 탈 장소 한 곳을 찜해 놓는다. ^^
모처럼 하는 자가용 여행이 재미가 있기는 했지만 차가 소형인데다 5명이 타니 피로도가 상당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또 여행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해서리 이 번에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다음 날 우리가 향한 곳은 빠야오(PHAYAO)라고 치앙라이에서 남쪽으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100여 km를 가면 나오는 도시이다.
빠야오까지는 고개 하나 없는 거의 평면에 가까운 지형이었다.
물론 옆으로는 산이 보이지만.
여기저기 빠야오 근처를 다니다가 방문한 한 마을 시골 장터.
돼지고기 꼬치 하나가 5밧이었다.
아마도 태국 최저 물가를 자랑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른 것도 엄청나게 싸고.
이런 곳에서 살면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을 듯 싶었다.
동네 이름은 반 매 로라고 했나?
태국어를 몰라 그냥 얻어 들은 것인데, 혹시 태국에 살게 되면 이곳도 고려 대상에 넣어 보려고 지명이 쓰여진 안내판을 사진에 담았다.
적은 예산으로 태국에서 살 사람이 있으면 이 동네 적극 추천한다. ^^;;
빠야오는 이런 호수가 있다.
이 호수를 보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방문한 마닌자우 호수가 생각나더라고.
왠지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
이 빠야오 호수는 상당히 넓은데, 민물고기도 풍부해서 여기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요리가 유명하다고.
외국인들은 거의 찾지 않지만, 태국 사람들은 많이 찾는 곳이라더군.
빠야오는 또 산속에 새로 만든 빠야오 대학교 건물과 학생들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그냥 지나가는데, 우리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인사하는 여학생들이 너무 예쁘더라고.
우리 일행은 모두 5명이었는데, 은퇴하신 박목사 부부, 혼자 소수민족 선교를 위해 분투하는 박선교사 그리고 우리 부부.
은퇴하신 박목사는 수구꼴통(?)이고, 박선교사는 종북좌파(?)라서 교회사, 우리나라 역사와 사회 현상에 대해 운전중에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박목사 사모님은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매 생각에 대해 날카롭게 혼내는(?) 남편 박목사가 위태위태해서 몸이 단 모습이었다.
나는 생산성없는 토론을 피하려고 왠만하면 두 사람 대화를 다른 것으로 돌리기에 열심이었고.
그래도 학교 학생들이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 때 전교조 교사들에게 좌경화되어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나서서 역사를 바로 잡아야 된다고 열변을 토할 때는, 한 때 전교조 교사였던 나는 좀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퇴직한 이상 이제 전교조 교사도 아니니 뭐, 이렇게 대충 넘어가기도 하고.
이렇게 70이 넘은 할아버지들 아직도 자기들이 이 세상의 주인공인 줄 착각하고 사신다.
흐른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법인데.
어쨌든 이렇게 이틀을 여행하고나니 몸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하루를 그냥 푹 쉰다.
그리고 이 치앙라이에서는 사진에 더 이상 억매이지 않으려고 사진도 왠만하면 찍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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