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일상

[치앙라이] 코끼리 마을 루암밋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정안군 2014. 2. 1. 17:13

 

 

 

오늘은 오후 내내 우울했습니다.

도대체 루암밋 라후 센터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집식구들 모두 온천에 가서 마사지도 받고 목욕도 한다기에 나는 그동안 별렀던 루암밋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루암밋은 치앙라이 주변을 흐르는 콕강 상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카렌족들이 주로 사는 곳입니다.

이 카렌족은 코끼리를 다루는 남다른 기술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요.

이 기술을 이용해서 루암밋 마을에는 코끼리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 루암밋 초등학교 뒤편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관리하는 라후족 어린이를 위한 기숙사 시설이 있었습니다.

2004년 겨울, 이 시설에서 우리 부부는 보름동안 이곳에 있는 라후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했었지요.

그리고 2005년 여름 우리 교회 선교팀과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치앙라이 무까타 식당에서 한턱을 쏘는 것으로 전에 했던 약속을 지켰었죠.

많은 아쉬움과 추억이 남은 곳이 루암밋 라후 어린이 센터입니다.

그곳을 오늘 방문했던 것이죠.

 

온천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시골길을 가면, 전에 갔던 삼거리에 닿습니다.

전에는 이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해서 국립공원까지 갔었지요..

중간에 개한테 심하게 쫓겨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왼쪽 길을 따라 갑니다.

조금 더 가면 비포장길은 콘크리트 포장길로 바뀌고 이 길을 따라 신나게 달리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한 아저씨에게 물어 봅니다.

“빠이 루암밋?”

“똥 빠이 어쩌고저쩌고”

똥 빠이만 알아들으면 됩니다.

똥 빠이는 직진이니까요.

 

.

 

조금 더 가니 제대로 된 이정표가 나오는군요.

친절하게 영어로도 표기가 된.

여기까지 13km정도를 온 건데 앞으로 14km정도를 더 가야 되네요.

하지만 거의 평지일 테니 별 걱정은 안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3km 정도를 남기고는 꽤 굴곡이 심한 길로 바뀝니다.

 

 

그래도 정다운 루암밋 마을 표지판을 보자 묘한 기분으로 바뀝니다.

거기에는 지금 누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있었던 흔적은 있을까?

마지막 언덕의 커브를 기분 좋게 내려가 루암밋 초등학교를 더 지난 곳에서 센터로 들어가는 골목을 찾습니다.

그런데 입구에 안내판이 없네요.

전에는 길 입구에 안내판이 있었는데.

골목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전에는 보비라는 동네 개 대장이 내 소리를 듣고는 반갑게 뛰어 오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루암밋 센터 입구에 섭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냥 안에서 공사하는 인부들 모습만 보이네요.

입구에는 외부인은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말라고 쓰여 있어서 조심스럽게 담장 공사를 하고 있는 한 청년에게 더듬적거리면서 태국어로 물어 보는데.

“나는 한국인이다. 여기 한국인 목사나 선교사 있어?”

없답니다.

한국인은 아무도 없답니다.

그러고 보니 입구의 양쪽 모서리에는 태국 국기만 꼽혀 있는데, 이곳은 한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담장 앞에 쓰여 있는 글씨도 한국이라는 코리언이 없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

 

언젠가 매 아이에 있는 이 지역 선교 센터 본부에서 분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영향이 있었을까?

후원 문제로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던데 그래서 이 시설이 다른 태국의 재단으로 넘어 간 것인지.

아무래도 이게 가장 비슷하게 유추할 수 있는 스토리인 듯 보인다.

 

어쨌든 뭔가 더 허름해진 센터를 보면서 왜 그리 허전하던지.

라후 센터는 이제 제 추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에 예베를 같이 드린 위나이가 여기에 갤러리를 지었다고 해서 찾아보기로 합니다.

길가를 다니면서 위나이를 아냐고 물어 보는데 아는 사람이 없군요.

 

코끼리 타는 곳이 다른 곳으로 바뀌었고 옛날보다 더 번창해진 것만 확인합니다.

여기 있을 때 코끼리들이 얼마나 학대를 받는지 보고는 코끼리 타는 것은 절대 반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터라 좀 찜찜하기는 합니다.

 

조그마했던 카렌족 교회는 아주 크게 새로 지었더군요.

라후족 교회들이 한국 교회의 후원에 의존해 자립심을 잃었던 것에 비해 이 지역 카렌 교회들은 어려워도 자기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는데 무엇이 정답인지 이런 것으로 보여 주는 듯합니다.

라후족 센터는 후원이 끊기니 그냥 사라져 버렸지만, 자립했던 카렌 교회는 이토록 번창하고 있으니.

 

루암밋 초등학교 앞에는 이 지역이 아주 낙후된 곳이었을 때 초등학교 건물을 지어준 일본인을 기리는 기념석이 서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이렇게 학교 시설을 지어 주었더라면 이렇게 이 기록이라도 남았을 텐데.

여러 가지로 아쉬운 마음입니다.

 

 

루암밋 마을 어귀에서 뒤를 다시 바라봅니다.

멀리 라후족 센터 안에 있던 예배당의 모습이 멀리 보입니다.

참 예쁜 교회 예배당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라도 잘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전히 콕강은 짙은 흙탕물 색을 머금은 채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옛 시조가 떠오르더군요.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그렇습니다.

산과 강의 모습은 변함이 없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만 바뀌었습니다.

라후족 어린이 센터 안에 있던 아이들은 이제 어디서 살까요?

짜흐, 짜이, 쏭크란 따나완 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이곳 라후 어린이 센터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뭔가 개운하지 않은 뒤끝이 남은 루암밋 방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