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일상

[치앙라이] 소수 민족 출신 학생들 자립을 위해 김밥 장사로 나섰습니다.

정안군 2014. 3. 18. 20:30

 

 

 

 

 

 

 

내 이야기가 아니고 집사람 이야기입니다.

센터에 나오는 대학생들이 여럿 있는데 지금은 방학이라서 알바 하느냐 많이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학생 세 명만 일요일에 교회에 나옵니다.

그 중 한 명은 일요일에 쉬는 알바 자리를 구했다는데 두 명은 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짤렸다더군요.

사실 소수 민족 출신 아이들은 평생 이 나라에서 천민으로 살아야합니다.

태국 사람 집에는 들어 가지도 못하고 태국 학생들과 어울릴 수도 없습니다.

태국 사람들이 이들과 접촉하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소수 민족 아이들은 자기 고유어를 사용하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태국어를 배우니 발음에서 소수 민족 출신과 태국 사람이 구별이 된다더군요.

대학을 졸업해도 공무원이 되거나 교사가 되는 것도 힘들답니다.

영락없는 우리나라 조선 시대 천민들의 모습입니다.

알바에서도 차별이 있다네요.

소수 민족 아이들을 알바로 채용하면 손님으로 오는 태국 애들이 싫어하니 주인들이 잘 채용을 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일단 모르고 채용했다가도 나중에 알게 되면 다른 이유를 대고 자른답니다.

센터에 나오는 나리가 그런 경우입니다.

나리(가명)는 22살 라후족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어보우자' 인사말의 주인공들이지요.

다른 한 명은 위나이(가명)은 아카족입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태국 사람들에게 워낙 기를 눌려 살았기 때문에 대인 기피증 비슷한 것이 있지요.

아무튼 이런 모든 것들을 한 방에 해결하기 위해 집사람이 나섰습니다.

대학 졸업해도 할 일이 없고 갈 곳이 없다면 만들어 줘야 한다고.

어제부터 나이트 바자에 나가 김밥을 팔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사실 어제는 집사람이 다 했고, 오늘은 나리와 위나이가 거의 다 했다는군요.

어제도 팔기는 다 팔고 오늘도 다 팔기는 했는데, 아직 김밥이 태국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이라서 김밥의 미래가 확실히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두 학생들이 일단 재미는 붙혔다네요.

 

더 태국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변화를 주면서 다양하게 시도해보면 일단 한국 이미지가 좋으니까 조금씩 먹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야시장에는 외국 먹거리로는 일본이 강세입니다.

물론 짝퉁이지만요.

일단 유치찬란한 스시가 있고, 오고노미야키와 다코야키가 꽤 잘 팔립니다.

사실 김밥도 전세계적으로 보면 스시의 한 종류로 받아 들여지지만, 맛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 그것을 어떻게 살려 나가느냐가 포인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열린 야시장에는 또 다른 재미한국인 아저씨가 제육덥밥을 파는데 단 돈 30밧입니다.

김밥 한 줄 그리고 이 제육덮밥이 같은 가격인데, 워낙 음식 값이 싼 나라라서 우리나라 사람이 돈 벌기는 쉽지 않겠고 태국 사람을 돕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주는 이제 끝이고 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나리와 위나이가 주도해서 한다고 하네요.

아무쪼록 잘 되어서 돈도 벌고 또 이걸로 두 명의 미래도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 흑인을 해방시켰어도 경제력이 있어야 진정 백인에게서 해방이 되었듯이(아직도 요원하기는 하지만) 태국에서도 소수민족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져야 태국 사람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제력이 있으니까 이 나라에서 중국 화교 출신들이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것처럼요.

 

아무튼 이렇게 도와준 우리 집사람 대단하지 않습니까?

오늘 기대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 간 나리와 위나이는 정말 고마워하더군요.

이럴 때는 나도 집사람이 대단해 보입니다.

 

사실 자기 입에 밥 넣어 주는 사람보다 더 고마운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