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던 사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 높은 뜻과 이상을 자꾸 훼손시키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건국절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대개 친일을 한 부역자를 조상으로 둔 사람들이겠죠.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하면 삼일절 독립 만세에 개입된 모든 사람은 그 당시 한반도 합법(?) 권력이었던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항거한 사상이 불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또 독립운동한 모든 조상들은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고요, 박 아무개씨처럼 일제 군인으로 근무했던 사람은 그 당시 권력에 따랐던 자랑스런 인간이 되는 셈입니다.
역사 왜곡.
하지만 이런 일들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있으니까요.
오늘은 삼일절 특집(?)으로 삼일절과 잘 어울리지 않는 한 인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바로 지금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황 아무개씨입니다.
지금 목에 힘을 주면서 박 아무개씨를 대행한다는 황 아무개씨.
그를 연구(?)하다 보니 재미있는 걸 몇 개 찾았습니다.
하나는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 신학교를 졸업해 전도사 직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사 겸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현재 황 아무개씨가 갖고 있는 직함입니다.
그것보다는 나와 같은 시기에 학력을 완성했다는 게 더 흥미가 있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같지 않지만 모든 학력의 시작하는 해와 달 그리고 끝나는 해와 달이 같다는 거죠.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61세 환갑, 나는 훨~~~~씬 아래. ㅎ
비록 확인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시작점이 어디인지 요게 좀.
나는 유치원을 중퇴했는데, 그는 확인이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유치원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었으니 별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요.
그러면 같음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단 그는 나와 같은 해에 그 당시 지금은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국민학교를 입학합니다.
그는 서울 마포에 있다는 봉래국민학교, 나는 충남의 한 읍 소재지 국민학교.
입학년도는 1964년이었습니다.
그도 나처럼 베이비부머 세대라서 콩나물 교실에서, 어쩌면 2부로 수업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가끔식 어머니에게 부탁을 받아 담임에게 시험지 값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드리기도 하곤 했는데, 그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동창들 평대로 그냥 평범한 어린이였던 듯.
졸업은 1970년 2월이었는데, 황 아무개와 나는 그 해 3월에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만 진학하는 방법은 달랐어요.
나는 촌놈이라 마지막으로 중학교를 시험 보고 들어 가고, 이미 무시험 입학제가 시행 중이던 황 아무개는 소위 뺑뺑이로 K 중학교를 배정을 받습니다.
여기서 K 중학교는 경기중학교가 아니라 마포에 있다는 K 중학교입니다.
몇 해 전 중학교를 시험을 보고 들어가던 시절만 해도 이른바 똥통 학교라고 놀림 받았던 그런 학교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확실한 근거는 못 찾았습니다.
황 아무개는 국민학생일 때는 잘 몰랐겠지만, 나중에 이런 상황이 좀 속상하지 않았을까요?
나중에 경기고등학교에 들어 갈 정도면 대단한 수재였을 텐데 그냥 시험보고 일류 중학교 가는 게 더 폼났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전 입시로 중학교 진학할 때는 동계 진학이라는 제도도 있어 그냥 일류 고등학교로 쉽게 연결할 수 있었으니.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류를 따랐을 수도 있겠구요.
입시가 생략된 국민학교 시절은 그냥 공부 잘 하는 어린이 정도였었을 테지만, 중학교 입시가 있을 때에는 명문 축에 낀 것 같지 않은 그가 다닌 중학교에서 황 아무개는 학교 측의 엄청난 기대와 사랑을 받았을 겁니다.
그야말로 그렇고 그런 학교였으니 그 전에는 어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있었겠어요?
하향 평준화가 된 곳이었을 테죠.
그런데 입시 제도가 바뀌고 뺑뺑이로 입학한 학생들 수준은 극과 극이 아니었겠어요?
입시 제도가 바뀐 덕에 경기고등학교에 들어 갈 것으로 보이는 재학생이 나타났으니.
게다가 그가 다닌 중학교는 사립학교.
전에는 아랫쪽 극에 속하는 학생 일색이었는데, 윗쪽 극인 학생이 바로 황 아무개.
그런 그가 학교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는 눈으로 보 듯 뻔하죠.
그 학교는 미션 스쿨이었다죠?
대접 받는 학생이 갖는 학교에 대한 이미지는 당연 좋았을 테고 기독교에 대한 감정도 호감 쪽으로 진해지는 것이 당연하겠죠.
아마도 중학교 때의 경험이 그의 인생 행로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아무튼 그는 이종걸, 노회찬, 고승덕 등과 함께 1973년에 경기고등학교에 진학을 합니다.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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