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7

518 광주는 말한다.

정안군 2017. 5. 18. 12:11

 

 

 

오늘 아침 광주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실시간 중계를 통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이란 용어에 부정적이고 '민주 항쟁'이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 의견입니다.

 

518 광주 민주 항쟁.

 

광주 518묘지는 망월동으로 흔히 불려 묘지가 있던 동네가 광주 망월동이고 현재도 같은 곳인가 했더니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유홍준의 남도 답사 일번지 광풍이 불 때 잠시 광주에 들려 아들들과 함께 가 봤던 그곳이 아니더군요.

 

잠시 망월동 묘역에 대한 정보를 인용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원지인 광주광역시의 북구 운정동 산46번지에 위치한 광주광역시 시립공원묘지 제3묘역으로 950평의 규모이다.

이곳에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령들의 묘 137기와 그 후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묘 30기가 안치되어 있었다.

망월동 묘역이라는 이름은 광주광역시 시립공원묘지의 별칭으로, 예로부터 토끼 모양의 명당으로 전해진 마을인 망월동이 그 입구에 자리잡은 데서 자연스럽게 붙여져 널리 쓰였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양민들이 손수레와 청소차에 실려와 이곳에 묻히면서 이 별칭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비극을 상징하게 되었다.

1994년 11월에 시작된 '5·18묘역 성역화 사업'에 따라 1997년 4월 30일 운정동 산34번지 일대의 5만 280평 부지에 '5·18묘지'가 새로이 조성되었다.

이 해 5월 1일부터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희생자들의 유해가 '5·18묘지'로 이장되면서 망월동 묘역은 '5·18구묘지'로 불리게 되었다.

 

 

1980년 5월.

나는 그때 대학 4학년이었습니다.

22살.

정말 싱싱하고 풋풋한 나이였습니다.

1980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서울의 봄'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동안 학생 대표는 학도호국단 체제에서 사단장이라고 불렸는데, 민주화 영향으로 직선으로 학생 회장을 선출하면서 각종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졌죠.

학내 모순, 체제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짐짓 혼란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우리 과도 느닷없이 어용 교수 소동이 일어나면서 강의도 중단되고 일부 학생들은 농성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좀 엉터리 같은 어용 교수 소동에 흥미가 없던 우리 패거리들은 동네 개울에서 고기를 잡기도 하고, 동네 파출소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도 치고 열심히 놀았네요.

이렇게 사회 현상에는 무지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학내 시위는 학교 모순을 넘어 사회 체제 모순으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5월이 넘어 가면서 시위는 전두환 퇴진으로 주제가 바뀝니다.

시내에서 시위를 한다는 공보에 역 앞 도로에서 대기하다가 시위대에 참여를 하기도 합니다.

그때 스타워즈 대장처럼 무장을 한 경찰들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시내 중심 도로를 활주하다가 역 광장에서 농성을 하던 우리 학교 시위대는 총장님이 학교로 돌아 가자는 말로 모두 해산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서울에서는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 있었습니다.

 

자고 나니 또 세상이 바뀌어 있더군요.

계엄령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고향으로 바로 돌아 갔습니다.

뒤에 우리 대학에도 공수 부대가 진주해서 멋모르고 학교에 왔던 학생들이 꽤 많이 두들겨 맞았단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광주 사태에 대해 뉴스를 접합니다.

 

긴 겨울공화국.

잠시 봄.

그리고 다시 겨울.

이제사 광주는 다시 봄을 맞습니다.

 

그 사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입수해 읽으면서 광주를 읽습니다.

아!

광주.

그동안 광주 희생자에 대한 모독, 희생자 가족에 대한 모독이 이어졌습니다.

마치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에 대한 모독과 흡사했습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야만의 세월이었죠.

 

다시 봄을 맞이한 광주의 진실은 이대로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을 말대로 광주 희생자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이정표였습니다.

5월이 오면 아직도 그때 더 용감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그게 살아 남은 자들의 몫이겠죠.

 

그제부터 내리던 비는 일기예보 상에는 어제 저녁 늦게 그친다고 예보가 되어 있었는데 그게 끊임없이 이어져 오늘 아침까지 내렸습니다.

징하네요.

이제 비가 그치나 봅니다.

마치 우리나라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상황 같습니다.

이제 서서히 구름이 개고 맑은 날이 오겠죠?

그게 지금 여기 현재 날씨입니다.

한국의 상황이기도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