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생 프로필
이름 : 쉐인쪼뚜
나이 : 17세
학 교 : 양곤서부대학 화학과
장래 희망 : 동시 통역사
대학교에 재학중인 쉐인쪼뚜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학비를 지원했는데, 올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기숙사에 입소하여 영성훈련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원래 불교도 가정에서 자란 학생이었는데 학비지원하면서 전도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이름 : 아웅진툰
나이 : 12세
학교 : 쉐비다 소재 아웅뚜카 사립학교 7학년
장래 희망 : 항공기 엔지니어
이름 : 쩨신툰
나이 : 11세
학교 : 아웅뚜카 사립학교 6학년
장래 희망 : 의사
이름 : 아웅민먓
나이 : 10세
학교 : 아웅뚜카 사립학교 5학년
장래희망 : 건축가
이름 : 아웅민칸
나이 : 10세
학교 : 아웅뚜카 사립학교 5학년
장래희망 : 의사
기숙사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선발시험을 치루어서 미얀마어, 영어, 수학 세 과목이 모두 80점이 넘어야 합니다.
미얀마는 공교육의 질이 현저하게 낮아서 정부 학교에 다녀서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숙사생들은 사립학교에 다니게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5살에 학교에 입학합니다.
미얀마는 출생 후 일년이 지나야 한 살이 되니까 한국나이로는 6살입니다.
입학하면 기초반이 있고 기초반을 마치면 1학년입니다.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있으니까 학제로는 5학년제 입니다.
5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중학교, 고등학교는 9,10학년입니다.
학생들은 계속 선발 중이고 소수의 인원을 집중하여 양육하기 위해 10명의 기숙사생을 정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명의 학생을 더 선발할 계획인데, 좋은 학생들이 선발되어 양육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얀마에서 온 선교 편지>
미얀마에서 성결교단 파송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내 동생으로부터 선교 편지를 받습니다.
다시 학생들을 모집하여 선교 센터에서 양육시키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네요.
내 동생 선교사는 그동안 미얀마 각지에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을 해 왔습니다.
미얀마는 사회 기반 시설 전체가 형편없지만 학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합니다.
언젠가 지어주려는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창고 같은 건물 안에 어린이들이 가득 모여 앉아 있었던 장면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이게 학교라니.
학교는 이들의 미래인데...
나는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라서 국민학교 시절 이부제나 콩나물 교실을 경험한 바가 있지만, 그토록 열악한 곳에서 배운 적은 없었습니다.
그뒤 그 자리에 학교 건물이 교단 여전도연합회의 후원으로 지어졌을 때 다시 가보게 되는데, 그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좋았는데, 어린이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본래부터 나는 동생에게 학교 짓는 사업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선교지 여기저기에 지어진 예배당 건물이 별 쓸모 없이 버려지다시피 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에 정말 필요한 것을 해주라는 뜻이었죠.
동네 어귀에 지어지는 예배당은 기껏해야 주일 하루만 쓰고는 일주일 내내 잠겨 있기 일수입니다.
물론 꼭 필요한 곳도 있겠죠.
어쨌든 학교는 주중 어린이나 학생들이 공부하는 장소로 쓸 수 있고 또 주말에는 방과후 활동을 하면 그 쓰임새가 두 배가 되지요.
주민들도 학교를 지어주었으니 주말에 사용하게 하주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 음악이나 미술 아니면 외국어 훈련을 통해 어린이나 주민들과 접근하는게 쉬워집니다.
살짝 예배 장소로도 쓸 수 있구요.
태국은 소수민족의 숫자가 얼마 안되어 태국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 어찌보면 너무 당연할 수 있지만, 미얀마는 소수민족의 숫자가 엄청남에도 미얀마 사회의 영향력은 태국과 마찬가지로 미미합니다.
그래서 태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소수민족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미얀마의 선교사들도 소수민족을 선교 대상으로 삼아 왔더군요.
태국이나 미얀마나 소수민족은 기독교화된 숫자가 꽤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미얀마나 태국 사회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태국과 미얀마 양국의 핵심 세력은 강력한 불교도입니다.
그러면서 정치와 경제에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는 정말 어렵습니다.
처음 미얀마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 동생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소수민족으로 접근하지말고 어렵더라도 미얀마 주 민족인 버마인들을 대상으로 하라고.
그리고 버마인 마을에 학교 지어주는 것으로 시작하라고 말이죠.
내 생각이 괜찮다고 생각한 것인지 미얀마에 오래 산 동생은 그게 당연하다고 느꼈는지 그렇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작한 버마인 아이들 양육하기.
아무튼 몸도 마음도 멀었던 미얀마에서 소식을 받습니다.
귀한 소식을 받으니 반갑고도 반가운 친구가 첫 머리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름도 몰랐는데, 이름이 쉐인쪼뚜군요.
쉐인쬬뚜.
이 친구를 처음 본 것이 벌써 오년 전인데, 양곤 외곽의 쉐비타 마을이란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동생이 새로 지어 주고 있던 예배당이 있던 마을인데, 거기서 모자 두 명을 소개 받습니다.
바로 쬬뚜와 쬬뚜 엄마였어요.
당시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단칸방이 있는 집이었는데, 정말 허름했습니다.
거기서 쬬뚜 엄마와 쬬뚜에 대한 사연을 듣습니다.
쪼뚜 엄마는 그동안 너무 험한 세월을 살았더군요.
완전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쬬뚜 엄마는 만달레이 교육대학인가를 졸업해서 교사로 일하던 인텔리이었는데 결혼하면서 교사는 그만 두었다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죽고 얼마 전 딸도 백혈병으로 잃었다더군요.
돌봐줄 이웃도 없어서 제대로 손도 못 쓴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빈민이 되어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그런 사연을 듣고 동생이 쪼뚜 엄마를 교회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교사로 일하도록 하였답니다.
쪼뚜 학비도 내어 주고요.
내가 쪼뚜 모자를 만난 것은 그 일이 있고 얼마 뒤의 일이었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긴 모자는 좀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는데, 옮긴 집이 내가 본 집이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은 얼마나 험했을까 알려주는 집이 근처에 있었어요.
돼지우리보다 더 못 해서 돼지보고 거기 살라고 하면 돼지도 서럽다고 할만한 집이 교회 앞에 있었는데 쪼뚜 모자가 산 집과 비슷하다더군요.
아무튼 영리했던 쪼뚜는 사설 학원에도 다니고 했다던데 이번에 대학에 들어 가면서 기숙사에 이주한 모양입니다.
양곤서부대학에 들어 갔다고 해서 학교 수준이 어느 정도 되냐고 하니 제법 상위에 속하는 좋은 대학이라네요.
이 소식을 들으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처음 그 모자를 보면서 어린 애들이 셋이나 딸린 채로 혼자 몸이 되신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났거든요.
다행히 우리 삼남매가 잘 되어 우리 어머니도 많이 좋아하시고 고향 교회에서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가정이란 말까지 들었으니 어머니께는 효도를 한 셈입니다만.
아무튼 쪼뚜가 대학에 들어 갔다는 소식을 들고 그 쪼뚜 엄마는 얼마나 기뻤을까 새삼스래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에게 너무 큰 일을 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한 사람, 더 나가 한 가정을 일으켜 세워 주었으니 말이죠.
쬬뚜말고도 입주한 다른 친구들도 아주 똑똑하다네요.
모두 우리나라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입니다.
보나마나 모두 가정은 몹씨 어려울 것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센터에 보내지 않지요.
미래의 희망을 보니 마음 한 곳이 찡합니다.
꿈도 당찹니다.
동시 통역사.
항공기 엔지니어.
의사.
건축가.
과연 이들의 꿈이 이루어질까요?
후원과 관심의 손길이 더 많아져 이들이 자기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네요.
생각 같아서는 모두들 한국으로 유학에서 정말 미얀마를 위한 큰 일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무엇보다도 잘 자라나서 사회도 바꾸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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