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일에 다시 읽기 시작했던 성서를 오늘로 다시 끝냅니다.
8개월이 조금 못 되는 기간이었네요.
하루에 5장씩 읽는데, 이렇게 읽으면 대략 2년에 3번 정도 읽는 속도가 됩니다.
모두 알다시피, 이번에 성경을 읽던 기간 중에는 우리나라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대선과 문재인 대통령 취임.
그리고 북쪽 젊은 친구의 끝없는 불장난.
쓰여진지 무려 2천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야 하는 성서를 요즘에도 읽는 이유가 뭘까요?
물론 읽을 가치가 있어서겠죠.
읽어 아무 짝 소용이 없다면 뭐하러 시간 낭비하며 읽겠습니까?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성서, 성질 급한 현대인을 위해 그 내용을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이미 예수께서 마태복음 22장 37 - 40절로 정리를 하셨습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것도 긴가요?
더 줄이면 어찌 될까요?
요한 1서 4장 7 - 8절을 보면 힌트가 있지 않을까요?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렇습니다.
성서를 단 한 용어로 줄이라고 하면 그 단어는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아멘.
새 정부가 출현하고 새 자리를 맡을 인물을 청문할 때 언젠가부터 '동성애'가 그 사람을 낙인 찍는 주제가 된 듯한 감이 듭니다.
동성애.
이건 성 정체성의 문제라 찬성이나 반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보편적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장 청문회에서 후보자가 별 결격 사유가 없는데, 동성애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물어 그걸 결격 사유로 삼고자 했던 국회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개신교 신자들이 엄청난 문자 폭탄을 보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결국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국회에서 부결되어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반대 중에 그가 했다는 동성애 찬성에 대한 개신교의 반대를 그 이유의 하나로 듭니다.
그건 동성애 찬성 반대 문제가 아니고 소수자 인권 보호라는 다른 문제인데요.
어쨌든.
대법원장 후보자의 경우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전에 트집의 기준이 종북이냐 아니냐의 기준이 이제는 동성애 찬성이냐 아니냐로 수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황석영씨가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와 1980 광주에 대해 증언을 했습니다.
거기서 황석영씨 아버지가 육이오 때 피난 길에서 어느 편인지 몰랐던 군인들에게 한밤중 검문을 당했을 때 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정치를 모르는 선량한 양민입니다. 어느 편을 지지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이 말로 그의 가족은 살아 났다 합니다.
앞으로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야 할까요?
'나는 사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선량한 양민입니다. 어느 편을 지지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우문현답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나의 동성애에 대한 의견은 분명합니다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적어도 이렇게는 해야 되지 않는지 성경의 예를 들어 말해 보려 합니다.
예수 재림 후,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그 울림이 퍼져 나갈 때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이들을 벌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율법학자였던 가마리엘이 사도행전 5장 38 - 39절에서와 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동성애자라고 하는 사람들, 이들을 사랑할 자신이 없으면 가마리엘 말대로 그대로 두세요.
동성애가 사람의 억지 소행이라면 무너질 것이고, 그 소행이 하나님께로 나왔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셈이니.
적어도 아무 힘도 없는 동성애 소수자들 반대한다고 시청 앞에 무더기로 모여 소리 높이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동성애를 찬성하는냐 반대하느냐와 같은 유치찬란한 질문을 남에게 던지지 마시길.
적어도 예수의 이웃 사랑을 입에 올리며 사는 개신교 신자라면.
예수가 말하는 이웃 사랑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그런 차별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는 심지어 간음한 여인까지 품으셨습니다.
동성애가 죄이고, 그 죄가 간음죄보다 더, 훨씬 더 커서 용서를 못할 죄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사랑은 이해입니다.
적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요즘 청문회 정국에서 교회 그리고 신앙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지구 역사 6,000년.
동성애.
요즘 개신교 교회가 어찌 이리 되었을까요?
분명 성서 속의 예수 행동과는 분명 다릅니다.
그렇담, 당신들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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