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3장 1 - 8절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장모님이 좋아하는 두리안이 혹시 나왔을까 하여 농산물시장에 가 보았습니다.
이미 철이 지난 것을 알기에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입구에서 칸칸 늘어선 가게 사이로 나가는데, 역시 어지간한 과일은 다 때가 지나 별 게 없었어요.
수박도 없고, 망고도 시원찮고...
기껏 해야 자몽, 용과가 제 철인듯 하더군요.
역시 없겠구나 했는데.
가게가 거의 끝날쯤 놀랍게도 두리안이 있었습니다.
우리 장모님 복이 있네요.
가격도 다행히 한참 나올 때와 별차이가 없었습니다.
원래 두리안은 비싼 과일이라서 어지간한 태국인들은 손도 못 대는 귀하신 몸이거든요.
농산물 시장의 가게들은 도매로 팔기 때문에 두리안 한 두 덩이 손 봐서 까주거나 하는 걸 잘 안하려 합니다.
태국인들은 쉽게 거절을 못하는 편이고, 외국인이 해 달라고 하니 번거로워도 해 주는 편이지요.
가게 주인에게 '쑥 쑥 완 완' 달고 잘 익은 놈을 골라서 알맹이만 따라 담아 달라고 하는 게 좋습니다.
괜히 자신의 능력을 믿고 대충 골라 그냥 통째로 들고 오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요.
가시 투성이의 두리안을 손질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덜 익은 건 냄새도 유난히 심하고 맛도 덜합니다.
특히 두리안을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잘 익은 것을 주는 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두리안이야말로 첫 대면이 평생을 좌우하니까요.
자칫 덜 익은 것을 먹으라고 했다가 마음이 틀어지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은 두리안은 영원히 끝입니다.
주인이 골라서 까준 것을 먹어 보니 역시 맛이 좋네요.
화장실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이 두리안 맛이라고 했던가요?
아무튼 누가 그 말을 처음 내었는지 모르지만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리안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친구인데요.
우리 두 사람 관계는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전생에 엄청난 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초등학교 이학년 때 그 친구가 전학오면서 만난 이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붙어 살았습니다.
그 친구는 골목 대장으로, 나는 골목 쫄병으로. ㅎ
오죽하면 아들만 삼 형제인 그 친구 집에서 나를 포함해 아들 사형제라고 했을까요.
그렇게 붙어 다니다가 대학에 들어 가면서 길이 달라져 만날 기회가 적어집니다.
그 친구는 신학교로 가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구요, 나는 사범계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언젠가 그 친구가 포함된 목회자들 모임에 갔다가 내가 더 이상 그 모임에 관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목회자들은 내 고향 교회의 선후배였습니다만.
그래서 언젠가 둘이 있을 때.
너와 나는 이제 걷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하니 더 이상 만나지는 말자.
하지만 기도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너를 위해 하는 기도를 빼 놓지는 않겠다 이렇게 말을 했드랬습니다.
그 뒤.
어떤 모임이든 모임에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말한대로 기도 중에 그 친구 이름을 빼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워낙 성격도 좋고 믿음이 좋은 친구라서, 그 친구는 계속 순탄한 길을 걸어 지금은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퇴역하여 백수의 몸이 되었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입니다.
나는 그 친구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노무현이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둔 것이 자랑스럽다고 한 만큼, 나도 그 친구를 내 친구로 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건 그렇고.
큰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사역한다는 것은 화려하긴 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지요.
열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열 배 힘든 것이 아니라 열에 열을 곱한 만큼 힘이 듭니다.
그런데 열 명도 아니고 몇 천 명을 만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쉴 때는 푹 쉬어야 되는 것인데.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쉴 기회가 있으면 이곳으로 오라고 말을 했습니다만 아직도 답은 없습니다.
언젠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친구가 두리안을 아주 좋아 한다고 하더군요.
두리안이라.
제 철에 이 동네에 오면 두리안은 널렸는데...
그러니 두리안을 볼 때마다 생각만 납니다.
두리안 가게 주인은 이제 두리안은 끝이랍니다.
언제 다시 들어 오냐고 물으니 내년이라더군요.
이제 두리안 철은 끝났다고.
그렇습니다.
처음에 올린 전도서의 말씀처럼 모든 게 때가 있습니다.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두리안 철이 끝나면서 친구에게 두리안을 먹으러 오라고 말할 일도 올해는 없어졌네요.
내년에 두리안 철에는 꼭 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백수의 한가한 소리일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다 때가 있으니, 쉴 때도 두어야 하는 법인데...
마음만 이렇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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