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7

[치앙라이] 닮은 듯 아닌 듯한 모습, 가루다와 금시조

정안군 2017. 9. 27. 12:26

 

 

푸미폰 태국 전 국왕의 장례식이 다음달 25일, 그러니까 2017년 10월 25일부터 5일간에 걸쳐 행하여 진다고 하네요.

그 중 26일은 다비식(화장)이 있어 그 날은 공휴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그 식장은 카오산에서 멀지 않은 싸남 루엉(Sanam Luang)인데, 그 광장에서 한참 그 행사 준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문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행사장 준비 상황이 보도되는데, 규모든 예산이든 엄청나 보입니다.

 

오늘 신문에 올라 온 사진은 제작이 끝난 거창한 가루다의 모습입니다.

태국 사회는 힌두교, 불교 그리고 토속 신앙이 섞여 이루어진 사회라서 불교의 모습에서도 힌두교의 영향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태국 왕을 지칭하는 라마(Rama)도 힌두 신화 라마야나에 나오는 성군을 따 지었다고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힌두에 대해 공부를 해 봅니다.

 

힌두 신화에서 말하는 우주의 중심은 수메루(Sumeru)산입니다.

중국을 거쳐 오면서 한자로 의역되어 우리나라로 전해진 이름은 수미산.

앙코르 와트의 옥수수처럼 올라간 탑이 바로 수메루 산을 의미하죠.

이 수메루 산을 둘러 싸고 있는 전설적인 숲이 Himavanta (타이 : หิมพานต์, rtgs : Himmaphan)인데, 그 숲이 힌두 신화에 나오는 나가(naga), 킨나라(kinnara) 및 가루다(garuda)와 같은 신화 생물의 고향이라고 하네요.

나가, 킨나라, 가루다.

어디서 한 번쯤은 들은 말들 아닌가요?

 

여기서 나가에 대해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봅니다.

 

나가는 인도 신화에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반(半)신격의 강력한 힘을 소유한 큰 뱀으로, 특히 힌두교와 불교에서 발견되는 킹코브라의 형태를 띤 신에 대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단어이다.

보통 목을 치켜든 모습으로 몇 개의 머리를 갖기도 하는데, 적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독과 자신의 큰 부상도 금방 치료하는 놀라온 회복력을 가지고 있어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신으로 숭배를 받아 왔다.

 

킨나라는 알고 보니 천사의 도시라는 뜻의 방콕의 원 이름의 처음인 끄룽텝의 텝(천사)이군요.

사진을 보면 정부나 도로를 표시하는 기호에서 본 듯한 모습이죠.

우리나라 절의 사천왕이나 장승 역할을 하는 듯 보입니다.

 

다음은 가루다(Garuda)입니다.

가루다는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큰 새.

가루다는 거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매의 머리, 부리, 날개, 발톱, 다리를 가지고 있다.

얼굴은 하얗고 날개는 빨갛고 전신은 금색으로 빛난다.

그렇기 때문에 금시조(金翅鳥)라고 의역되는 경우도 있다.

 

가루라(迦樓羅) 또는 가류라(迦留羅) 등으로 음역(音譯)한다.

사천하(四天下)의 큰 나무에 살며, 용(龍)을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두 날개는 펼치면 그 길이가 336만리(里)나 되며 황금빛이다.

대승(大乘)의 경전에서는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일명 팔부신중)의 하나에 들어가 있으며, 밀교에서는 범천(梵天)·대자재천(大自在天)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새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다고 말한다.

 

 

힌두 신화는 불교와 섞이고 중국을 거치면서 묘하게 닮은 듯 아닌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나에게는 가루다는 우선 인도네시아 항공사 이름으로만 기억이 됩니다.

하지만 의역이 된 금시조는 이문열의 동명 소설을 TV에서 극화를 하였는데, 아직도 언젠가 그 때 본 내용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금시조(金翅鳥)

 

1981년 『현대문학』 12월호에 발표한 이문열의 단편소설.

 

1982년 제1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 작품은 「들소」, 「시인」 등과 함께 작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신념을 소설화한 이문열의 대표적인 ‘예술가 소설’이다.

작중의 주된 갈등은 서예에 천부적 소질을 지닌 고죽(古竹)과 그의 스승 석담(石潭) 사이의 서로 다른 예술관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참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소설의 도입은 죽음을 앞둔 고죽의 유년시절 회상으로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개가로 숙부의 집에서 자라던 고죽은, 숙부의 망명과 함께 석담에게 맡겨진다.

석담은 고죽을 문하로 거두기를 한사코 거부하는데, 이는 도(道)보다 예(藝)가 센 고죽의 작품이 자신의 예술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죽은 석담과 애증의 관계에 놓이게 되고, 급기야 스승 몰래 서예를 익히게 된다. 고죽의 타고난 소질만은 무시할 수 없었던 석담은 마지못해 고죽을 제자로 거두지만, 스승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그에 대한 반발과 욕심으로 인해 문하를 뛰쳐나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나름대로의 성취를 이루게 된 고죽은 다시 석담의 문하로 돌아오게 되지만, 석담과 고죽의 예술관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급기야 서른 여섯 되던 해에 석담은 고죽의 문하를 완전히 떠나 함부로 서화를 흩뿌리며 방황한다.

결국 고죽은 석담이 죽은 후에야 스승이 자신에게 관상명정(棺上銘旌)을 맡길 만큼 자신과 자신의 글씨를 아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의 결말은 이러한 과정을 겪은 고죽이 자신의 죽음에 임박하여 과거 자신의 작품들을 회수하여 불태우는 것으로 맺어진다.

예술이 다른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술관을 가진 고죽이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깨달음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불태우는 순간 금시조의 환영을 본다는 결말은 곧 작가 자신의 유미주의적 예술관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이 문열이 아저씨가 어쩐지 맘에 들지 않지만, 한 때는 그에게 매료되어 그의 모든 소설을 읽었었죠.

읽게 된 동기가 TV 극화 금시조였으니, 금시조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게 된 셈입니다.

 

그 금시조가 가루다의 모습으로 태국 전 국왕 장래식의 문지기로 나타났습니다.

태국과 우리는 이렇듯 닮은 듯 아닌 듯한 모습으로 오늘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