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살던 터를 떠나 다른 곳에 뿌리 내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흔한 예가 질병.
풍토병이라 해서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외부에서 흘러 온 사람에겐 치명적인 것이 될 때도 있지요.
물론 인디언의 사례에서 보듯 외부인이 가져 온 질병이 그 병에 면역이 없는 현지인들을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 잡는 것은 이래 저래 어렵죠.
나는 중학교를 시험 보고 들어 간 마지막 세대입니다.
이른바 박지만 세대의 한 해 위.
까까머리를 하고 검정 대마지로 된 교복을 입고 참석한 중학교 입학식에서 한 서양 선생님이 서툰 우리 말로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나는 미쿡에서 온 아무개입니다'
그 분은 미국 평화봉사단으로 파견 나온 신입 교사였습니다.
그 인삿말이 그 때 알고 있는 한국말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그 미국 선생님과 수업을 함께 했어요.
읽고 번역은 우리 담임 선생님이, 마지막 10분 쯤은 회화로 미국 선생님이 진행을 했는데.
이래 저래 영어 자체가 어려웠지만 그 회화 시간은 제대로 알아 듣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 그냥 맨숭 맨숭.
생각나는 건 그냥 인삿말뿐이었습니다.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I'm fine too.
That's good.
이 That' good(잘했어요)은 따라 하는 게 아니라는 건 나중에 알았죠. ㅎ
한동안은 열심히 댓스 굿까지.
그리고 머리 속에 남은 것은 Mountain은 마운틴이 아니라 마운은이라고 발음한다는 것.
이른바 미국식이었죠.
아무튼 이 선생님이 하숙을 하는데 밤에 심심해 하니 여럿이들 놀러 가라는 담임 선생님 말씀에 밤에 계속 놀러가 국민학교 국어 1학년 책 읽는 것을 도와 주곤 했는데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몇 날 며칠을 계속 가니 싫어하던 기색을 보여 가지 않은 적이 있네요.
그 당시 하숙집은 그냥 재래식 한옥이고 밥도 그냥 한식이었으니 얼마나 지내는 게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일 년인가 이 년인가를 지낸 후 미국에 일단 돌아 갔다가 다시 한국에 와 서울 s대 교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는 한국말이 아주 유창해져서 가셨죠.
참 씩씩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 사람이나 되어야 남 나라에 가서 사는 줄 알았지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가서 산다는 건 별로 실감을 못 할 때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작은 아들은 카나다(현지는 캐나다라고 안 한다네요)에 우리 부부는 태국에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그렇다고 해도 우리 부부는 여기에 뿌리를 잘 내렸을까요?
잠시 치앙라이에서 살던 부부가 미얀마에 가시면서 마당에 심어 놓았던 뽕나무와 채송화를 우리 집에 주고 가셔서 그걸 마당에 심었습니다.
뽕나무는 심어 놓으니 잎이 말라 가지를 몽땅 잘라 주었어요.
그 뒤 얼마 있으니 새 싹이 얼마나 예쁘게 돋아 나는지.
우리 마당에 이미 심겨 진 뽕나무들은 영 빌빌거리는데, 이 친구는 너무나 활력이 있습니다.
참 잘 자랍니다.
뿌리가 올 때부터 참 실했다 하더군요.
채송화도 가끔씩 빨강, 흰 꽃을 피워내며 잘 자랍니다.
이렇게 잘 자라는 것도 있는데, 얼마 전 새로 입양된 모링가들은 잘 정착한 게 몇 그루 안되는군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것들도 자리를 잡겠지만 처음부터 뿌리가 있던 것과 없던 것은 확실히 정착 속도가 다르네요.
우리가 여기 온 게 벌써 육 년째입니다.
남 나라 살이가 육 년째라.
인도네시아에서 여행할 때 우리에게 도움을 준 현지 기독교인이 해 준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아 그렇게 살려고 해 왔습니다.
Good Samaritan.
잘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래야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거라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그게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아직은 뿌리를 깊게 내린 게 아닌 듯 싶습니다.
역시 남 나라에서 터 내리고 사는 게 쉽지 않네요.
아니 내 마음을 다 잡아 사는 게 어렵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오늘따라 이래 저래 김이 새는 일도 많고 부아가 치미는 일도 있던 하루였습니다.
역시 세상 사람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ㅎ
다시 하심.
마음을 내려 놓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다시 생각합니다.
단지 상대의 어려움만 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게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이었죠.
우울한 하루였지만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잘 자라는 뽕나무를 보며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 이 뽕나무처럼 꿋꿋히 살자.
흔들리지 말고.
그리고 좋은 생각만 하며 하루 하루를 즐겁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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