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정착 2019

[치앙라이] 2월 첫째 주일 예배

정안군 2019. 2. 3. 15:40

 

 

 

 

 

가치있는 삶(A Worthy Life )

 

설교자 : 치앙라이 제일교회 전도사 낫타퐁 춤씨리(Nuttapong Chumsiri)

 

마가복음 4 : 30 - 32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나요?’

‘살기 위해 무엇을 하나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복을 주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합니다.

답을 주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신 때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다른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이 스스로 서로 돕게 하지 아니 하시고 인간이 지배하고 돌보며 그들에게 복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것에 복을 주기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후에 아담을 위해 여자를 만드셨고 아담을 돕고 생산하여 인류는 숫적으로 증가하였고 모든 창조물에게 더 큰 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기쁨은 인간의 불복종에 의해 부셔졌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했고 그와 화해할 수 있게 하셔서 우리는 그에게 돌아 왔고 가치있고 열매 맺는 삶을 사는 ‘복의 수단’이되었습니다.

마태복음 4 : 30 - 32절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는데, 이는 작고 보잘 것 없으며 때로 무시당하지만 결국 큰 나무를 이룹니다.

성서는 우리가 천국에서 가치있게 해 줄 세 가지를 말합니다.

 

1. 하나님에 의해 변화되기.

마가복음 4 : 30 - 31절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인간은 죄성이 있어 우리는 그 본성에서 스스로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죄에서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새 생명의 씨’를 우리 안에 심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고 십 수년 동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고 예수에 의해 속죄함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쓸모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함을 의미합니다!

 

니고데모는 아주 엄격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추종자로 오해 받지 않으려고 어느 밤에 예수를 방문합니다.

‘바리새’라는 뜻은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시기에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사회의 죄인들과 분리되어 거룩하다고 믿었습니다.

종교법에 엄격하게 복종한 것으로 알려진 그들은 대부분 안식일과 관련된 613개의 관습을 따랐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물 한 양동이 이상 옮기는 것과 한 장 이상 읽는 것과 불을 피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현재도 보수적인 많은 유대인은 아직도 이 법률을 엄하게 지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전등을 켜지 않고 자동 센서가 하도록 합니다.

이스라엘의 호텔은 ‘안식일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스위치를 누르지 말라는 그들의 종교법에 따르는 유대인을 위해 이 승강기는 매 층에 멈추고 열리는데 사용자는 원하는 층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외국인은 원하는 대로 승강기를 작동할 수 있지만, 유대인은 그렇게 하면 안식일을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의 때에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거룩하다 여겼지만 예수는 그들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태어남은 마음을 바꿔 하나님께 돌아옴을 의미하니다.

이는 우리 마음 속에 믿음의 씨를 받아들여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과 화해함을 의미합니다.

 

2. 가치있게 성장하기

마가복음 4 : 32절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는 새 생명의 씨를 뿌렸으나 그 씨를 우리가 받아 들이고 마음 속에 자라게 하기 전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땅에 볍씨를 뿌릴 때, 씨는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새 생명 씨도 우리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하여야 합니다.

씨가 뿌리를 내릴 때 우리 마음을 뚫어 고통을 가져 올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러나 이는 변화의 고통입니다.

 

예수의 예화에서 배웁시다.

작지만 겨자 씨는 큰 나무로 자랍니다.

태어나서 늙고 그리고 죽는 우리의 생과 다르게 영적 삶은 자랄 수 있고 영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남길 때, 아무 것도 취할 수 없습니다.

옛날 죽은 사람의 입 안에 음식이나 동전을 두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가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영은 육체적 죽음 뒤에도 계속됩니다.

고린도후서 4 : 16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주의하십시다.

식물이 자라면 잡초도 자랍니다.

우리 영적 삶이 자라면, 잡초와 같이 죄의 욕망도 자라 영적 자양분을 빼앗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잡초를 제거할 무기인 고백(자백)을 주었습니다.

요한1서 1 : 9절에서 약속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3. 다른 이에게 기여하기.

마가복음 4 : 32절은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로 끝납니다.

작은 겨자씨는 가치없이 보이나 5 m 높이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가치없이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심을 때 자랄 수 있고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다른 이들이 의지하는 사람이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만드신 변화의 완벽한 예입니다.

바울은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크리스천을 박해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고 그의 마음을 새 생명의 씨로 채웠습니다.

그 후, 바울은 믿음이 성장했고 열정적으로 주를 섬겼으며 복음을 전해 많은 교회를 세웠고 수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안에 새 생명의 씨를 심었습니다.

그 씨가 자라게 하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이 되는 것은 예수가 우리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 놓은 것처럼 우리를 희생하여야 합니다.

다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할 때에 우리는 탄생의 목적과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변화의 씨를 주신 것에 대해 주께 감사하고 그 씨가 우리 삶 가운데 자라도록 합시다.

가족과 교회 그리고 일터의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삽시다.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가치있는 삶을 이끌어 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