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여행 2022

[부다페스트]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

정안군 2022. 6. 19. 01:27

정들었던 이즈미르를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왔다.

여기서 이번 여행의 남은 여정 십여 일을 지내게 되는데 어떤 일이 있을지.

남들은 볼거리가 없어서 별 재미가 없다는 이즈미르에서 지내는 동안 살기에는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었다.

여러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도 받았다.

거기에 풍성한 먹을거리, 엄청나게 싼 물가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은 친절한 사람들.

한참 동안 그 이즈미르가 그리울 것이다.

 

거의 한 달을 산 아다(ADA) 아파트 호텔.

장점 : 교통의 요지라서 여행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단점 : 조금만 겸손해지면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짐이 많고 무거워 여기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물가 비싼 나라에서는 택시는 엄두도 못 낼 소리이지만 이 나라는 경제 폭망의 최고 전성기이니 그걸 충분히 누려야 된다 싶었다.

190리라 정도가 나왔는데 200리라를 주었다.

대략 15000원 정도.

 

문 앞의 팥죽색 가방이 이즈미르에서 쇼핑을 제법 한 아내가 가방이 부족하다고 여기서 산 것인데 잠시 후 우리와 헤어져 이산가족이 된다.

무슨 사연인지는 기대하시라.

 

여기는 이즈미르 국제선 입구이다.

국내선과 국제선이 제법 떨어져 있어 미리 갈 곳이 어디인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다른 곳처럼 공항에 들어올 때 엄격한 검사를 한다.

안은 비교적 한산한데 거의 독일 가는 비행기이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썬 익스프레스 항공.

이즈미르까지 일주일에 한 편을 운행하는데 오늘이 그 시작하는 날.

이즈미르에서 헝가리 가는 한국인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비자가 필요한지 안 한지 여러 번 물었다.

코리안 노 비자 소리를 세 번은 한 것 같다.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확인은 했는데 이제 코로나는 저 멀리 간 손님인 듯 마스크를 쓴 사람의 모습은 가끔 노인네들에게만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마스크는 이제 구 시대 유물.

그렇게 코로나 시대가 저무는가 싶은데 모르겠다.

인간이 지구에게 하는 짓을 보면 다른 보복이 또 올지도.

 

2시간 20분을 날아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렌츠 리스트 공항에 도착을 했다.

리스트의 이름을 따 지은 공항은 리스트가 살아 있었으면 좀 부끄러워할 규모나 시설이었다.

좁은 공간의 입국 심사장.

각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은 뱀처럼 구불구불한 줄을 몇 번을 돌아야 심사관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건물 일 층에서 끝나는데 이런 공항은 태국 치앙라이에도 없는 구조이다.

심사가 늦은 관계로 짐들은 미리 나와 빙빙 돌고 있어서 금방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가방에 식별을 위해 매어 놓은 손수건을 누가 떼어 버렸다고 아내는 꽤 잔소리를 해 댔다.

그때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챘어야 하는데 원래 입국장에서는 왠지 긴장 상태라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아무튼.

 

짐 검사도 없이 프리 한 공항을 나와 기계에서 표를 사는데, 카드를 넣고는 옆 숫자판에서 숫자를 찍어야 하는 것만 유의하면 큰 문제없이 다 쉽게 진행이 된다.

표는 공항 버스 표와 시내버스 일회용을 구입했다.

공항버스는 100 E.

이즈미르에서도 흔히 본 꼬리가 긴 버스였는데 이미 빈 좌석은 없어서 그냥 서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아스토리아 호텔 앞에서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데 이런.

지하도가 등장을 한다.

그런데 지하도에는 엘리베이터도 없고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옛날 구닥다리 형식 그대로였다.

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오다 본 건물들의 심각한 상태와 함께 이 나라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 꼬락서니가 지금 폭망 중이라는 투르키에보다도 훨씬 못 하구나.

중간 OPT 은행에서 돈을 좀 찾기로 했다.

그런데 ATM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려면 카드로 일단 긁어야 한다.

대단한 나라일세.

또 그렇게 해서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을 잘했다.

 

Bo33은 별이 네 개나 되는 호텔인데 주변 건물들은 좀 낡고 우중충 해서 위치가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좀 김이 일단 샜다.

건물 외관도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일단 안에 들어오니 환경이 확 바뀌면서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아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여.

 

체크 인을 하고 배정된 방에 들어와 짐을 정리하는데.

아내가 하는 말.

이거 우리 가방이 아니네.

이즈미르에서 산 그 팥죽색 가방이 바뀌어서 온 것이었다.

아이고 이 가방 주인에게 못 할 짓을 했구나.

얼른 가방을 닫아 호텔 프런트에 가서 도움을 청한다.

한참을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데 결론은 통화가 안 된단다.

점심도 안 먹어 배는 고픈데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서 직원에게 해결을 부탁하고 근처에 있는 중국 식당을 향해 갔다.

이 부다페스트가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중국 식당이 있다는 점.

 

중국성 대주점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중국집.

공항에서도 자국 말에 영어 그리고 중국어 안내가 될 정도로 이 나라 중국 사랑은 대단하고 또 중국인 파워도 대단하단다.

아무튼 우리는 모처럼 돼지고기를 진정한 고기로 여기는 중국 식당에서 모처럼 돼지고기 요리를 먹는다.

 

실내는 우리나라에서 중국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 분위기이다.

우리를 중국인인 줄 알고 신나서 중국어로 안내를 했는데 한국인이라 하니 토막 영어로 주문을 받고 했다.

나는 중국어를 잊은 지 오래된 몸이다.

 

모처럼 마파두부와 회과육을 시켜서 쌀밥과 함께 먹었다.

기름을 들어부어 놓아 두부나 돼지고기는 기름에 잠겼다.

그래도 모처럼 먹는 정통(?) 중국 요리라서 맛있게 먹었다.

가격은 이제 투르키에는 잊자.

그래도 한국보다는 좀 싸다.

 

잠시 아시아 마켓에 들렸다가 물건은 다음에 사기로 하고 호텔에 돌아와서는 직원에게 진행 상황을 물으니 오늘이 주말이어서 전화를 안 받는 것 같단다.

그러니 우리 보고 공항에 가서 알아보던지 아니면 월요일까지 기다리란다.

둘 다 망막한 상황.

어쩌나 싶었다.

사실 놓고 온 가방에는 귀중한 것은 없어서 못 찾아도 치명상은 아닌 정도.

그래도 가방을 잃어버린 사람은 심정이 어떠랴.

 

그때 이 부다페스트에 사는 아내 친구부터 연락이 왔다.

차를 가지고 올터이니 직접 공항으로 함께 가자고.

이게 바로 구세주의 음성이다. ㅎ

 

 

그래도 다행히 택은 버리지 않아 희망을 품고 바뀐 짐과 함께 공항으로 갔다.

공항은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눠 있단다.

하지만 넓지 않아 어느 구역에서 나온지는 쉽게 구별이 된다.

경비에게 문의를 하니 구내전화로 상황 설명을 하란다.

그래서 영어로 몇 마디 하니 거기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정말 잠시 후 한 직원이 나오더니 택을 보고는 같이 가자고 한다.

그래서 공항 안 짐 찾는 곳을 지나 더 안으로 가니 주인과 못 만난 가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많지 그런 생각할 새도 없었다.

한 구석에 손잡이에 아내 손수건을 두른 우리 팥죽색 가방이 다소곳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살아오시면 이렇게 반가울까?

바뀐 가방은 그 자리에 대신 놓고 우리 가방을 받아 돌아오는 길.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가라앉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이상하게 시작한 부다페스트 생활이지만 마지막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 다행이었다.

가방을 못 찾아 스트레스를 받았을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미안하였다.

그런데 전할 방법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