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를 표시하던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면서 Y2K 새 천년이 시작되던 해 2,000년하고도 1월 4일.
그 당시 중학생과 초등학생이었던 아들 두 명을 데리고 그야말로 배낭 여행에 나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때 30대 후반이었네요.
그전에는 일본을 좋아 했었는데 잘 아시다시피 일본이라는 물가가 장난이 아니라서 계속 가기가 무섭더군요.
왜 있지요?
굶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무지 허기지는.
물가가 비싸 실컷 먹지 못하니 그랬나 봅니다. ㅎ
그때 하이텔 '세계로 가는 기차'에서 태국 비행기표 공구라는 것을 했답니다.
하이텔이라는 것이 생소하다면 요즘 젊은이거나 그 시절 아무 생각없이 사신 분일 수도 있답니다. ^^
아무튼 그때 생각해도 무지 싼 가격으로 일본 ANA 태국 왕복권을 공구로 구입해서 태국 여행에 나섰더랬습니다.
공구가 뭐냐굽쇼?
에이, 이거 왜 그러세요..^^
일본 오사카 경우라서 시간은 좀 걸렸지만, 덕분에 간사이 공항을 한 번 더 구경하고(일본 간사이 공항은 그 전해인가 간사이 지방을 여행하고자 간사이 패스를 구입했을 때 두 차례인가 가본 적이 있답니다. 교토를 구경하가 다리 아프면 하루카라는 간사이 특급 열차를 탔어요. 물론 공항은 밖에만 구경했고요 ^^) 태국 돈무앙 공항에 도착을 했지요.
그때 이미 태국 가이드 북이 나온 것이 있어서 그다지 헤맬 일은 없었어요.
안민기씨 땡큐...^^
그리고 바로 공항 옆에 있는 돈무앙 공항에서 농까이가는 침대칸 달린 기차로 밤새 달려 라오스로 갔고요.
침대칸 일등석을 탔답니다. 어흠 ^^
아침에 라오스로 들어가 여러 날을 위앙짠(비엔티엔) 왕위앙(방비앵), 루앙 프라방에서 색다른 문화 경험을 하다가 루앙 프라방에서 스피트 보트를 타고 매콩강을 날랐습니다.
날랐다는 이 표현이 적당할 듯하네요.
그렇게 스피트 보트의 소음을 온 몸으로 견디면서 라오스 국경 마을 훼이사이까지 갔구요.
도착해서는 바로 국경을 넘어 태국 치앙콩에서 하루를 잤답니다.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왔을 때 첫 느낌은 지금도 생각나는데, 이제 문명 세계로 돌아 왔으니 아파도 죽지는 않겠다는 거였어요. ^^
그리고 세븐 열하나가 왜그리 새롭던지..
라오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더군요.
물론 그때 신기했던 원시시대의 모습(?)은 덩달아서 사라졌지만요.
아무튼 그렇게 라오스를 떠났고, 열대지방이라고 생각하던 태국이라는 나라에서 숙소를 잘못 선택하면 얼어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낀 하룻밤을 치앙콩에서 보냅니다.
대나무로 엮은 방갈로였는데, 한번 경험해본다고 들어간 것이 그만...
자다가 추워서 일어나 옷을 다 껴입고도 추워 결국 배낭 속에 다리를 넣고서 간신히 긴 밤을 보냈었네요.
아침에 쌀국수 한 그릇을 먹고는 치앙라이로 출발합니다.
치앙콩에서 오는 차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지요. ^^
고물 중에 상 고물...
그때 다니던 차들은 지금도 다닐겁니다.
그것도 씩씩하게. ^^
그리고 도착한 치앙라이.
하룻밤 정도 자고 치앙마이로 가려다가 의외로 괜찮아서 여러 날을 묵었죠.
처음으로 두리안이라는 것을 먹어 보고...
그러던 어느 날 남들처럼 매싸이에서 여권에 도장 하나 받고 미얀마에 넘어 가보려고 버스를 탔습니다.
얼만큼 갔을까 왼쪽 좀 먼 동네에 예배당이 보이더군요.
딱 봐도 한국 시골에 있는 전형적인 예배당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이 지은 예배당 같으니 저기가면 한국인을 만나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얀마 도장 찍고 타킬렉 구경하고 돌아올 때도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다음 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전거 한 대를 빌려 타고 나섰습니다.
그 예배당에 한번 가보려고요.
버스로 찾아 갈수는 없겠더군요.
거기가 어느 동네인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땡볕에 정말 한참을 달려서 그 예배당을 찾아 갔습니다.
가보니 맞긴 하더군요.
우리나라 교회에서 지원해서 지은 것은.
그러나 예배당 근처에는 개미 새끼 한마리로 없고 예배당 문도 잠겨 있었어요.
어떻게 한국에서 지원한 건 알았냐고요?
머리돌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대한 감리회 무슨 교회라고 기억을 했던 한글로 된 머리돌이.
그때 며칠간 치앙라이에서 있으면서 치앙라이라는 도시에 푹 빠졌고 언젠가 은퇴를 하면 이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습니다.
꽤 오래 되었지요?
내가 치앙라이에 발을 들여 놓은지..
그러니까 혹시 내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된다고 무시하지들 마셔.. ^^
이래뵈도 첫 발 찍은지는 15년 되었으니.. ㅎ
그리고 여러 차례 치앙라이를 방문하지만 그리고 매싸이쪽으로 길을 따라 여러 차례 지나갔지만 그 예배당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게 어디쯤 될까 항시 궁금했지요.
그러다가 이곳에 살러 와서 매 파 루앙으로 공부하러 다니면서 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METHODIST가 붙은 교회 입구를 발견한거죠.
감리교회라.
내 머리 속에 그때 그 교회는 감리교회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각인되어 있으니.
입구 안내판을 만났을 때 느낌 상 그리고 위치 상 아무래도 그 교회일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공부 시간이 촉박해서 가볼 수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제 낭래나이 폭포를 갔다가 내친 김에 그 교회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이 교회일까 싶은 교회를 먼저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니더군요.
한눈에 딱 봐도 아니라는.
그 다음은 METHODIST교회를 찾아갑니다.
이번에는 맞을까요?
입구를 찾기가 까다로워서 뒷쪽에서 접근했는데, 교회 묘지가 있더군요.
태국사람들은 보통 화장을 해서 묘지가 거의 없습니다.
교회 묘지가 있는 교회라.
예배당을 찾아가서 딱 보니 기억 속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한국 시골에 있는 예배당의 모습이었는데.
혹시나 해서 교회 예배당 가까이 가보니 어머나.....
이 교회가 그때 그 교회였네요.
머릿돌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중부연회 청장년들의 후원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그때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교회 마당에서 개인 택시를 열심히 닦고 있었고, 예배당 통로에는 개 신자(?)들이 모여서 더위를 피하고 계시더군요.
아무튼 그때보다는 더 활용하는 게 느껴졌지만, 보기에 좀 안쓰러웠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너무 낡았더군요.
예배당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예배실은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제안드리고 싶군요.
혹시 감리회 중부연회에 소속된 신자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청장년회에서 누군가가 한 번 여기를 와 보라고 권해 주시고 그래서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리모델링을 해 주시면 어떻겠는지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내 기억 속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희미한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오후들어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어제도 많은 비가 왔는데.
이상 기후이든 어쨌든기온이 많이 오르지 않아 요즘 지내기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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